혁신과 사람, 미래를 위한 두 개의 축 – 카를로스 하르텔 GE글로벌리서치 유럽총괄 인터뷰 (1부) – 읽어보기
Q: GE글로벌리서치 유럽에서 일하고 있는 입장에서, ‘글로벌’과 ‘로컬’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Dr. Haertel: GE는 역사가 오랜 기업입니다만, 의외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에디슨 시절부터 GE의 전통은 ‘혁신’에 있습니다. 연구 개발에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자해서 오늘의 모습을 만든 것이죠. 제가 생각하기에 바람직한 로컬-글로벌의 관계 역시 이런 GE의 특성에 기반합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Think Local, Act Global.”입니다.
제품이나 기술을 연구할 때에는 철저하게 지역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역에 따라 너무나 다양한 고객의 니즈 (Needs)가 있습니다. 그런 니즈를 충족시키는 솔루션을 만들고, 그 결과를 글로벌 스케일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려운 일이겠지만 GE의 역사는 이런 방향이 옳았음을 스스로 증명해 왔습니다. 연구개발 단계부터 철저하게 지역의 니즈에 충실하게,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그 연구의 결과물은 글로벌 수준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한국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에 기반한 복잡한 특성이 있고, 유럽이나 미국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있죠. 한국에서도 이런 다양한 니즈에 부응하는 연구 개발 역량이 강화되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기술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역시 협업의 일종이다
Q: GE독일에서 실행하고 있는 웹사이트 이노베이션 포럼(링크)은 과감한 시도가 돋보입니다.
Dr. Haertel: 현재 GE오일앤가스 코리아 박장원 사장이 독일에서 일할 때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었습니다. 초기 버전이 2012년 초에 등장해서, 2013년 여름-가을 쯤에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죠.
고객과 충분히 잘 소통하는 건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정작 당시 독일 GE의 홈페이지는 딱딱한 옛날 스타일이었습니다. 변화하고 혁신하는 GE의 실체를 담기에도 부족했고, 고객이 회사와 소통하고 싶어도 할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이노베이션 포럼입니다.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에 대해서도 훨씬 더 자세한 정보를 담았고, 혁신을 책임진 사람들이 직접 사이트에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말하자면 직접 고객과 GE가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이 된 것입니다. 고객들이 기술이나 제품에 대해 질문하면 전문가들이 바로 대답을 해줍니다. 기술 발전에 대한 기사나 콘텐츠 역시 풍부하게 반영했습니다. 사이트 자체가 소셜 미디어의 역할을 하도록 만든 것이죠.
Q: 기업의 입장에서 그런 사이트를 제작하고 운영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Dr. Haertel: 그렇죠. 그래서 회사 측의 승인을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모든 대기업이 회사 내부의 정보를 밖으로 유출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게 마련이죠. 내부에서 많은 직원들이 직접 참여하는 사이트다 보니, 그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정보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회사에서 통제하기도 어렵고 말이죠.
하지만 막상 실행이 되었을 때 GE독일의 직원들은 각자 회사를 대표하여 고객과 소통하면서도, 적절한 선을 훌륭하게 유지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사람들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직원들에게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주면 다들 알아서 스스로의 선을 지킵니다. 윗사람이 걱정했던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아요.
누구나 세상과 사회에 대해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싶어합니다. 이노베이션 포럼을 통해 열린 장을 만들어주자, 일반 고객들은 전문가와 직접 소통할 수 있게 되어 기뻐했고, GE의 전문가들은 그런 소통을 통해 사회에 지식을 환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대화를 통해서 GE의 연구 개발은 더 한층 높은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GE에 대한 고 객들의 애정도 분명히 더 깊어지게 되죠. 이런 관계도 일종의 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언어의 문제 등이 있어서 GE독일에서만 이노베이션 포럼을 실행하고 있지만, 장차 이런 시도가 글로벌하게 번져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희들 역시 배워나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고요.
성공도 실패도, 기술보다 사람의 일이다
Q: 관여했던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Dr. Haertel: 정말 어려운 질문이군요. 부모한테 자식 가운데 누가 제일 예쁜지 하나만 골라보라는 것과 똑같아요.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다른 의미가 있고 모두 소중합니다. 이 질문이 대답하기 어려운 데에는, 무엇이 성공인지 사람에 따라 정의하는 바가 다르다는 이유도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GE의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획기적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반면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얻어 많은 이익을 올리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 어떤 프로그램이 성공해서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가 높아진 것을 성공의 척도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고객기업과 튼튼한 관계를 구축해서 미래의 가능성을 열게 되는 결과도 성공이라 할 수 있어요.
이런 모든 정의에 해당하는 성공 사례들을 저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특정한 하나를 꼽는다기보다는 사례 하나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오늘날 헬스케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는 기술이라면 바로 MRI 촬영을 위한 과분극13C 기술을 들 수 있을 겁니다. 탄소의 민감도를 높여 MRI장비로 인체의 대사과정을 촬영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죠. 이 기술을 적용하면 암이나 치매 등의 진단에서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납니다. 결과도 흥미진진하지만, 이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 자체가 저에겐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카본 13의 경우에는 기술 개발 이후 브랜딩까지 책임져야 했습니다. GE말고는 이 기술을 가진 다른 기업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Q: 성공에 대해 말하기는 정말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패에 대해 말하는 건 좀 쉬울까요? 당신은 실패를 통해 어떤 것을 배웠습니까?
Dr. Haertel: 어떤 프로젝트가 기술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해결할 수 없었다고 실패라고 부를 순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연구개발 과정에서 자주 부딪히게 되는데요, 이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됩니다. 우리가 무모한 시도를 할 때면 물리학이 “죄송하지만 여러분은 너무 낙관적이시네요. 여러분이 원한 물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온도에서 그런 상태는 나타나지 않아요.”라고 대답해주죠.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이건 실패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과정의 끝에서 의외의 금광을 발견하게도 되죠. 물론 때로는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지만요.
제가 생각하는 실패는, 어떤 기술이나 요소가 비즈니스나 제품에 제대로 투입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기술적 여건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비즈니스의 어떤 갈등 요소나 필요조건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간과했던 데에 있을 때입니다. 즉 기술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여러 제약 요인를 잘 읽지 못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은 실패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런 실패를 겪을 때면 저는 혁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생각합니다.
성공할지 실패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기술을 개발한다고 해봅시다. 연구소에서는 몇 년 동안이나 여러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왔습니다. 이 기술의 가능성이 증명되어 현실 비즈니스에서 펼쳐야 하는 상황인데, 정작 필요한 부품을 제작해줄 회사가 없거나 기존 공급망에 연결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죠. 제약 요인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기에 생긴 결과입니다.
이런 경험에서 제가 배운 것은, 혁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즉 아이디어 단계부터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연구소에서 어떤 기술을 어떻게 표현할 것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디어가 기술이 되고 다시 시장에 실제로 나가서 소비자와 만날 때까지, 비즈니스의 모든 요소들을 통틀어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결국 연구개발의 산출물이 현실화되기를 가장 원하는 사람은 당신이니까요.
초창기부터 고민하면 얻게 되는 것도 많으며 상황을 스마트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늦게 생각하면, 결국에 의외의 상황을 만나 당황하는 일이 놀랄 일이 꼭 생기게 되죠.
Q: 감사합니다. 혁신에 대해 처음부터 생각할 수 있는 인터뷰였습니다.
Dr. Haertel: 예. 감사합니다.

이노베이션포럼의 하르텔 박사(위)와 박장원 사장(아래)
외부를 향해 열린 혁신의 창, 이노베이션포럼
현재 GE오일앤가스 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박장원 사장은 카를로스 하르텔과 함께 GE독일의 대표적인 혁신 플랫폼인 이노베이션포럼(InnovationsForum)을 만든 인연이 있다. 이노베이션포럼은 GE의 내부 전문가뿐만 아니라 고객, 파트너, 외부 전문가들이 학제간 협력과 공동 연구를 통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혁신을 이끌어내고 있는 플랫폼이다. GE리포트코리아는 이노베이션포럼을 중심으로 박장원 사장과 미니 인터뷰를 가졌다.
1. 하르텔 박사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습니까?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독일에서 일하고 있을 때 하르텔 박사는 제 상사였습니다. 당시 저는 고객혁신센터 부문 즉 이노베이션포럼의 개발을 이끌고 있었지요. 그는 뛰어난 멘토이자 좋은 친구로 제가 독일을 떠난 이후로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2. 하르텔 박사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주시겠어요?
하르텔 박사의 딸이 한국어를 전공했어요. 그래서 1년 6개월 동안 서울에 와서 공부와 인턴 근무를 했었죠. 하르텔은 딸을 만나러 두 번이나 한국에 왔었습니다. 첫 방문 때는 제주도에 갔고 올해는 서울에 왔었습니다. 하르텔은 매우 활발한 여행자로 한국문화에 대해 언제나 호기심을 가지고 배우려고 합니다. 딸이 한국에 있자 하르텔은 저도 사용하지 않는 카카오톡 사용법을 배우기도 했어요. 그리고 불고기 정말 좋아했습니다. 개인적인 여행이었지만 그걸 도울 수 있어 좋았습니다.
3. GE 글로벌리서치 유럽과 함께 만든 이노베이션포럼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어요? 포럼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주요 성과 등에 대해서요.
이노베이션포럼을 만들기 전부터 우리는 혁신에 관련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무엇보다 고객과 파트너의 니즈를 충족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그 연구의 결과가 바로 이노베이션포럼이지요.
이노베이션포럼은 고객과 GE를 이어주고, GE의 다양한 성과들을 소개하며,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혁신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플랫폼입니다. 고객과 파트너, 외부 연구자 등 포럼의 외부 구성원들은 이노베이션포럼을 통해 GE의 새로운 솔루션과 기술을 폭넓게 접할 수 있습니다. 또한 GE의 제품과 서비스에 연관된 전문가와 함께 노하우를 교류할 수도 있고 민감한 정보에 대한 공동연구를 (비공개로)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이노베이션포럼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쪽에 걸쳐 동시에 진행할 수 있습니다. 고객들이 각자 편리한 방식을 택해 우리와 교류할 수 있도록요. 온라인 이노베이션포럼에는 GE독일과 함께 현재 당면해있는 난제들을 해결하고 싶은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기존 고객과 파트너, 연관 산업이나 학계 등 누구나요. GE의 제품, 기술, 서비스를 혁신하는 데 참여하고 싶다면 이노베이션포럼이 그 시작점입니다.
오프라인 이노베이션포럼은 내년에 개최할 계획입니다. 일단 포럼이 개최되면 참가자들은 그들의 경험을 온라인 이노베이션포럼의 플랫폼에 저장하고 이후 지속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협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현재 700명이 넘는 고객이 참가 신청을 했고, 온라인 페이지도 매우 활성화 되어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연구실’(Labs)이라는 부르는 공간에서는 이미 40개가 넘는 고객 프로젝트가 개설되었습니다.

GE오일앤가스 코리아의 박장원 사장
4. 고객의 관점에서 이노베이션포럼만의 차별점이 있을까요?
고객이 GE의 전문가들과 비공개의 개별적인 ‘연구실’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이노베이션포럼의 특징입니다. 연구실에서는 서로의 아이디어, 파일, 소재 등이 자유롭게 교환되며 그에 대해 전문가의 조언도 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연구실은 초기 단계의 기술 프로젝트나 고객과의 비즈니스 관계, 또는 지식 교류 포럼 등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런 형식의 포럼은 GE 내에서도 처음이었습니다. 한국에도 곧 설립하여 독일에서의 성공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5. 이노베이션포럼에서 소셜미디어는 어떤 의미인가요? 만약 두 가지가 통합될 수 있다면 그 통합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어떤 면에서 이노베이션포럼은 소셜미디어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용자들이 등록(회원 가입)을 하고, 대화에 참여하고, 또 코멘트를 남길 수 있도록 사용자들에게 블로그 및 기사, 이벤트 등의 형태를 제공하고 있죠. 그리고 사용자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콘텐츠 내용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가령 이노베이션포럼의 훌륭한 콘텐츠를 GE독일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공유하고 있지요.
6. 만약 GE코리아에도 별도의 이노베이션포럼이 만들어진다면 혁신의 측면에서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한국의 디지털 문화 특성이나 얼리어답터 경향을 생각해보면 한국에도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들, 가령 포럼을 통해 GE와 고객을 연결해 고객의 요청에 빠르게 응대한다든가, 아니면 협업 플랫폼을 통해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도 공동의 연구나 협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소셜미디어들을 잘 활용하고 이노베이션포럼의 좋은 성과물들이 공유된다면 GE가 기술 부분에서 선도적인 기업으로 각인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이겠지요.
혁신과 사람, 미래를 위한 두 개의 축 – 카를로스 하르텔 GE글로벌리서치 유럽총괄 인터뷰 (1부) – 읽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