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고는 GE코리아에서 커뮤니케이션 및 대외협력 업무를 맡고 있는 조병렬 전무가 2017년 하버드비지니스리뷰 9-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조병렬 전무는 GE코리아에서 커뮤니케이션 및 대외협력 업무를 맡고 있다. ‘전략적 사고와 설득 커뮤니케이션으로 조직과 개인의 성공을 이끈다’는 모토하에 비즈니스의 전략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GE크로턴빌 리더십개발센터에서 인증한 ‘Business Presentations Skills Facilitator’이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학사와 서강대 경영대학원 MBA를 취득했다.
한국 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GE
GE는 잭 웰치 전 회장 시절부터 최근 은퇴를 발표한 이멜트 회장 재임 기간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간 한국 기업, 특히 대기업의 대표적인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금융과 제조 및 서비스 등 다수의 계열화 사업을 보유한 한국 대기업 집단의 특수성도 GE가 주요 벤치마킹 대상이 된 이유 중 하나다.
‘GE 크로턴빌 연례 고객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가한 국내 기업 경영자들이 수료식을 마치고 GE에 대해 평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 표현들을 볼 수 있다. “CEO부터 실무자까지 메시지가 정렬(alignment)되고, 간명(concise)하게 정리(articulated)되어 있었다.” “핵심 경영전략과 주요 이니셔티브를 외부인에게 공개하는 비즈니스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 났다.” 즉 한국에서 온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자사의 현실적 경영과제 해결에 대한 단서와 솔루션을 GE 리더와의 교류와 만남을 통해 확인했던 것이다.
한국 기업의 벤치마킹 대상과 범위는 시대별로 당면한 경영과제에 따라 변했다. 무결점 및 품질 경영을 도입하려는 기업은 GE의 6시그마를, 인사평가시스템을 개선하려는 기업은 GE의 ‘세션 C’ 프로세스를, 준법윤리경영을 도입하려는 기업은 GE의 컴플라이언스 및 옴부즈 제도를 벤치마킹했다. 녹색 성장(GE 에코메지네이션), 전략적 사회 공헌(Corporate Shared Value), 중앙기술연구소 운영(GE Global Research Center), 인재/리더십 개발(GE Crotonville Leadership), M&A 전략(Portfolio Management), 리스크 관리(Enterprise Risk Management) 등도 한국 기업들이 찾는 벤치마킹 주제였다. 최근에는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GE가 선도해 온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혁신적 조직문화 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관심의 중심에는 2001년부터 16년간 GE를 이끌며 대변혁을 주도한 이멜트 회장의 21세기 리더십이 자리잡고 있다.
이멜트 재임 중 GE의 변신
이멜트 회장은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재임하며 미국 중심의 전통적인 산업/미디어엔터테인먼트/금융서비스 복합 기업이던 GE를 21세기 ‘프리미어 디지털 산업 기술기업’으로 바꿨다.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의 규모와 복잡성은 물론, 질적 측면에서 공히 혁명적 변신을 이룩했다.
그는 취임 후 공격적인 인수합병(영국의 아머샴(Amersham) 및 스미스항공(Smiths Aerospace), 미국 엔론의 풍력사업, 유니버셜 등)을 통해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했다. 동시에, 성장 가능성이 낮은 범용기술 사업(플라스틱, 실리콘, 석영 등 소재산업)과 글로벌시장 경쟁력이 낮은 저수익 사업(보안, 센싱 등)을 과감히 처분했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이멜트 회장은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기술 기반의 제조/서비스 기업으로 더욱 단순화시켰다. 사업부문간 시너지가 적고 성장성이 낮은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처분했으며 그 자금으로 고성장 기술기업을 사들였다. 프랑스 알스톰(Alstom)의 전력 및 그리드 사업 인수는 에너지/전력 분야의 확고한 글로벌 승자가 되기 위한 GE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였다. 동시에, 한때 전사 이익의 절반을 차지했던 금융서비스 부문의 자산 대부분을 처분하겠다고 발표한 후 2년 내에 매각을 완료했다.(일부 산업금융 부문은 존속시켰다.) 또 오일가스 산업의 장비 공급은 물론, 디지털 기반의 유전 서비스 제공 능력을 갖추기 위해 베이커휴즈(Baker Hughes)를 인수했다.
2011년부터는 데이터와 애널리틱스 등 소프트웨어에 기반한 디지털 산업기업으로 질적 변혁을 추진하기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소프트웨어센터 건립 및 GE디지털 사업부 설립, 디지털 선도 기술기업 인수와 제휴 그리고 소프트웨어 인재의 대거 영입 등 산업인터넷(Industrial IoT)의 생태계 구축을 선도했다. 나아가,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적층식 제조사업부 출범, 로보틱스 공장 확대 등 첨단 제조기술력을 강화하며 산업인터넷과 결합해 산업 고객들에게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GE의 미래 성장 기반을 확립했다.
조직문화와 인재개발 분야 혁신
비즈니스 포트폴리오 변화 못지않게 이멜트 회장의 리더십은 조직문화 혁신과 새로운 인재개발 분야에서도 발휘되었다. GE의 조직문화 및 일하는 방식의 변화 방법론인 ‘워크아웃’과 ‘6시그마’를 뛰어넘어, 글로벌 금융위기 전과는 전혀 다른 21세기 글로벌 경영환경에 적응하고 미래를 선도하는데 꼭 확립되어야 할 조직문화의 혁신을 가속화했다. 2013 년부터는 이른바 ‘조직문화 대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간소화(Simplification)’를 4가지 방향에서 전사적으로 추진 했다. 1) 민첩하고 가벼운(Lean) 조직, 2) 탁월한 영업마케팅, 3) 속도 중시, 4) 디지털 인프라 및 역량 등을 말한다. 이 ‘Simplification’은 21세기 디지털 및 데이터 경제 시대에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파괴적 문화혁신이었다.
또 주목할 만한 변화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경영 및 문화를 적극 수용한 점이다. GE는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롱 사이클(long-cycle) 기업이지만, 경쟁사보다 더 빨리 고객의 성과를 높이는 솔루션 제공으로 고속 성장하는 스타트업의 경영 방식을 GE 내부에 과감하게 수혈했다. 수평적 조직운영과 문화역량도 강화했다. 기존 수직 통합된 사업부별 조직 구조의 강점을 적극 활용하되, 고객과 시장의 관점에서 GE 가 제공하는 종합 솔루션 역량을 확대하기 위해 조직 내부의 수평적 역량을 결집한, 이른바 하이브리드 조직운영 역량을 강화했다.
21세기의 주력 부대인 밀레니엄세대의 역량 개발을 지원 하고 차세대 리더로 길러내기 위해 교육훈련 및 인재육성 방식도 대거 혁신했다. 팀과 직원들의 성과를 관리하는 기존 ‘성과관리시스템(Performance Management System)’에서, 개인의 성과를 개발하는 프로세스 중심의 ‘성과개발시스템(Performance Development Process)’으로 변혁했다. 일례로, 직원의 최종 성과를 9개 블록으로 구분하는 방식을 없앴다. 그 대신 직원 상호간의 개발과 육성(ongoing coaching)에 중점을 두고 있다.
GE 벤치마킹 시 한국 기업이 유의할 점
이처럼 GE가 중시해 온 경영가치, 그리고 프랙티스들은 21 세기 글로벌 경영의 성공을 위한 공통 교과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 기업의 성공에도 유효한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 실력주의(Meritocracy): 인종, 성별, 나이, 국적과 무관하게 성과를 내는 사람에게는 기회와 보상을 제공
– 윤리와 청렴(Integrity/Compliance): 해당 지역 국가가 제정한 법과 규정을 준수할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확립된 관행을 존중하기 위한 기업의 준법성과 직원 개인의 윤리 및 청렴도
– 다양성(Diversity): 국적, 인종, 성별, 나이 등 다양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 유사한 배경의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보다 다양한 관점과 우수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어, 궁극적으로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낸다는 생각과 신념
– 사명과 목적(Mission/Purpose): 재무적 가치 창출을 넘어 고객과 사회 일반의 보편적 삶의 향상에 기여하는 이유와 목적을 기술한 기업 가치 메시지, 특히 밀레니엄 세대 직원들의 헌신과 몰입을 불러일으키는데 매우 중요
– 인재 개발 투자(Leadership development): ‘모든 직원이 리더’라는 믿음으로 단기적 경영환경변화에 영향 받지 않고 인재개발과 육성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철학과 관행
그럼 이번에는 한국 기업이 이멜트 회장의 리더십과 GE의 프랙티스를 벤치마킹할 때 유의할 몇가지 특징을 언급하고자 한다. 무작정 베껴오기보다는 GE와 한국 기업과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벤치마킹해야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 이사회 중심과 전문경영인 체제 vs. 오너 중심의 경영 체제
GE는 내부에서 장기간에 걸쳐 육성, 검증된 사람이 최고경영자로 선발되어 회사를 책임지고 이끌어 간다. 한편 독립적인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는 회사의 전략, 감사, 경영진 개발 및 보상 등 핵심 사안을 감독한다. 반면, 한국 기업은 오너가 직접 경영을 지휘하거나 전문경영인들이 직간접적으로 오너경영을 보좌하는 형태가 많다. 이사회의 감시 및 감독 기능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GE의 이멜트 회장이 주도한 일련의 혁신을 한국 기업이 벤치마킹 할 때는 오너경영자가 주도권을 행사하거나, 오너경영자로부터 위임을 받은 전문경영인이 리더십을 행사해야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2. CEO 장기 재임 vs. 3년 내외의 임기
GE의 CEO는 통상 10년 넘게 장기 재임하면서 글로벌 경기 변동과 단기적 시장 변화에 대처하고 장기적 기업가치 제고에 집중한다. 단기 수익창출 목표 역시 장기적 기업가치 제고라는 틀 안에서 설계된다. 반면 한국 기업의 CEO 재임기간은 짧다. 전문경영인의 경우 3년 안팎이다. 시장과 경쟁의 큰 변화를 고려한 기업의 장기적 가치 제고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와는 관계없이, 현실적으로 단기목표 달성에 집중하게 된다. 따라서, GE와 같은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의 선제적 변화(매각, 인수, 합병 등)를 한국 기업의 CEO가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3. 매트릭스구조와 네트워크형 의사결정 vs. 단선적 위계적 구조와 수직적 의사결정
GE는 조직구조가 매트릭스 형태이며 의사결정 과정도 복잡한 편이다. 매트릭스 조직구조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GE 는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단순화시키고 직원들의 주도성과 책임감을 강조하는 리더십 역량 강화로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반면, 한국기업은 CEO에서 직원에 이르는 의사결정이 단선적 위계구조이며 보고라인이 단순하고 이 과정에서 내부 시너지 결집이 어려운 편이다. 의사결정이 신속하고 효율적이라는 강점도 있지만 요즘과 같이 변화무쌍한 대외 환경에서는 오히려 대형 리스크를 내포하는 구조로 작용 할 수 있다. 따라서 GE의 조직문화 혁신을 한국 기업에 적용하려면 조직구조 및 운영의 변화가 동시에 검토되어야 한다. 단순 위계적 조직구조하에서는 직원들이 여러 부서와 수평적으로 협의 및 의사결정하는 기회가 적어, 직원들의 협력 역량과 팀워크 발휘가 어렵다. 목표로 하는 수평적 문화형성도 어려울 수 있다.
4. B2B 사업구조의 장기사이클 비즈니스 vs. B2C 사업구조의 단기사이클 비즈니스
GE는 기업과 정부 고객 대상의 B2B 사업이 중심이다. 투자 검토에서 투자이익 회수에 이르는 전과정이 짧게는 3년 내외, 길게는 10년 이상 걸린다. 따라서, 수개월 사이클로 움직이는 국내 다수의 B2C 기업의 경우가 GE의 프로세스와 방법론을 적용할 때는 본업에 대한 인식과 접근법이 달라야함을 고려해야 한다.
5. 다각화된 사업군 vs. 특정 업종 중심의 소수 사업군
GE는 산업 특성이 상이한 사업부문(에너지, 오일가스, 헬스케어, 항공, 철도 등)을 한지붕 아래에서 운영하고 있다. 사업부별 책임경영시스템(Profit & Loss)하에 전사 공통기능 (Corporate)과의 협업이 전 세계에서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운영체제와 프로세스를 갖고 있다. 동시에, 주요 프로세스마다 회사의 주요 리더십 미팅을 연계해서 ‘One Company’로 서의 정체성과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한국의 대기업집단에서 GE를 특별히 많이 벤치마킹하는 이유가 이러한 유사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특정 산업에 국한된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의 경우엔 GE의 베스트 프랙티스 적용시 규모와 복잡도 및 운영 측면에서 현실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경험과 교훈을 적극적으로 직원들과 공유하라, 당장!
마지막으로 한국의 C-레벨 경영자라면 당장 적용해도 효과 높은 이멜트 회장의 리더십 프랙티스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퇴임 발표 후 이멜트 회장은 전 세계 30만 명 직원을 대상으로 타운홀(웹캐스트 방송)을 개최했다. 그가 직원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멜트 회장은 GE의 비즈니스 혁신과 마케팅을 이끌어 온 베스 콤스탁 부회장과 조그만 톱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엉덩이만 걸치는 높은 의자에 걸터앉아, 1시간가량 16년 CEO 의 경험을 나누었다. 이는 전세계 직원들에게 생중계되었고, 행사 현장엔 GE의 차세대리더십 프로그램을 이수 중인 젊은 직원들이 함께 했다. GE에서 경영자와 직원간 대화 분위기가 늘 그러하듯, 이번 대화도 매우 캐주얼했다. 일정한 프로토콜이 없다. 마치 카페에 온 것처럼 넓고 긴 테이블에 앉아 시끄럽게 떠들고, 중간중간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멜트 회장은 시종일관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로 대화를 이끌어 갔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무거운 과업을 무사히 마친 사람의 안도감, 최적의 후임자(존 플래너리 신임 CEO) 에게 넘겨준 뒤의 홀가분함 등의 느낌을 받았다. 이멜트 회장이 GE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즉 혁신을 주도하는 데 크게 의존했던 고위경영자 중 한 사람이었던 콤스탁 부회장도 본인의 생각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은 사전 접수된 질문에 우선 답했고, 실시간 질문 및 현장 질문도 소화 했다. CEO로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 취임 당시와 현재의 GE 에 대한 비교 평가, 디지털 산업기업으로 변신을 결정하게 된 이유, 비즈니스 최종 결정을 내릴 때 본인 생각의 프로세스 그리고, 리더십 개발을 위한 본인의 과정 등에 대해 이멜트 회장은 숨김없이 소회를 밝혔다. 마치 한 가문의 사람들 이 다 모인 가운데 그 집의 큰 어른이 어떻게 본인이 여태껏 가문을 이끌어 왔는지를 들려주는 모임 같은 것이었다.
마지막 발언에서 이멜트 회장은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려는 열망을 절대로 멈추어선 안된다”고 직원들에게 당부 했다. 비즈니스 커리어 전부를 GE에서 보내며 실천했던 신념의 큰 줄기를 임기 마지막 날 드러낸 것이다.
한국의 경영자들도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풍부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우리 경영자들 역시, 직원들과 틈나는 대로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 느낌을 솔직하게 공유하면 좋겠다. 바로 실행하자. 경영자에 대한 존경, 배움의 문화를 키울 것이며, 기업의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