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조금 전 비행기에 올라 좌석에 앉았다. 그런데 승무원이 출발을 위해 문을 닫으려 하는 순간, 비행 중 감상하려 했던 블록버스터 SF영화를 아직 다운로드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보자. 승무원이 전자기기의 전원을 꺼달라고 요청할 때 당신은 영화 다운로드 버튼을 누른다. 승무원이 당신의 자리로 다가올 때쯤엔, 이미 당신은 다운로드를 완료하고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넣은 뒤일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당신은 자율주행 택시를 불러 집으로 돌아간다. 가는 길에는 신호등에 걸리지 않고 모든 교차로를 통과한다. 서로 실시간으로 소통해 차량간 충돌을 방지하는 로봇 시스템의 등장으로, 신호등은 이제 불필요한 기술이 되었다. 당신이 스마트홈에 스마트폰을 이용해 귀가 중임을 알리면 집에 있는 고효율 배터리는 당신이 좋아하는 대로 집 주변과 조명, 음향을 세팅한다.
물론 이는 미래에나 가능한 장면이다. 이 시나리오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놀라운 신기술이 아니다. 미래를 위해 필요한 기술은 이미 존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앞에서 상상했던 미래의 생활이 실현되려면, 일단 무선으로 연결된 수백만 대의 기기 간에 방대한 양의 정보를 동시에 송수신할 수 있는 초고속 통신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한 전력을 초고효율로 신속하고 매끄럽게 제어하는 능력, 우수한 배터리 관리 능력, 자유롭게 센서를 배치하여 주변 환경을 이해하는 높은 지능의 기계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 모든 요소에 들어가야 하는 필수적 부품은 사실 전혀 새롭지 않다. 그것은 바로 스위치(Switch)다.
스위치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스위치는 전등을 켤 때 사용하는 것으로, 스위치가 켜지면 전원과 전구를 잇는 회로에 전류가 흐르면서 전자가 이동하고 불이 켜진다. 이러한 전류 제어는 복잡도에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컴퓨터나 의료기기부터 대형 산업기계에 이르기까지 전기를 필요로 하는 모든 장치에 적용된다. 휴대전화 네트워크처럼 무선 주파수를 송수신하는 시스템에서도 스위치는 필수 요소다. 송신기와 스마트폰에 장착된 스위치를 통해 기기간 데이터 전달에 필요한 무선 주파수 부품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기기가 선택할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이 더 많고, 주파수가 더 높을수록 송수신할 수 있는 데이터량은 증가한다.

멘로 마이크로(Menlo Micro)에서는 전자 시스템의 가장 기본 구성요소 중 하나인 전자 스위치를 개발하고 있다. 멘로 마이크로의 크리스 지오바니엘로는, 최첨단 전기기계식 릴레이로 스위치 개폐를 단 10~20밀리초 만에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기술을 적용한 전기기계식 릴레이는 이를 5 마이크로초 안에 수행할 수 있어 약 1000배 이상 빠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속도가 가능한 것은 매우 소형으로 제작하기 때문이죠.” (이미지 제공: Menlo Micro)
수많은 미래형 신기술을 활용하려면 스위치의 크기, 무게, 비용이 모두 지금보다 줄어들어야 한다. 또한 악조건에서도 수십 년에 걸쳐 우수한 신뢰도를 기반으로 신속하게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러한 전기 릴레이의 기본 작동 수준 즉 스위치 기술은 지난 50년간 상대적으로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신생 기업이 기존의 스위치를 21세기형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나섰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기업인 멘로 마이크로(Menlo Micro)는 반도체산업에서 습득한 비법과 첨단 금속 가공기술을 이용해 스위치 크기를 머리카락 두께 수준으로 축소했다. 멘로 마이크로는 GE에서 분사된 기업으로 반도체 제조기업 마이크로세미(Microsemi), 코닝(Corning), 팔라딘 캐피탈 그룹(Paladin Capital Group) 등의 기업에서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 현재 이곳에서는 GE글로벌리서치에서 12년간 진행했던 연구 결과를 상용화 중이다. 사실 GE글로벌리서치의 엔지니어들은 GE에서 제조한 기계에 장착되는 전기기계식 스위치를 재개발하는 업무를 맡았었다.
지난 12년간 GE글로벌리서치에서 과학자로 재직했던 멘로 마이크로의 공동 창립자이자 CTO(최고기술책임자) 크리스 키멜(Chris Keimel)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이 바로 모든 기술 전문가들이 꿈꿔왔던 순간입니다. 실험실에서 각 분야의 과학자들이 협력하여 수년에 걸쳐 진행한 연구 결과를 업계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사업 기회로 구현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멘로 마이크로의 지오바니엘로는 “이 디지털 마이크로 스위치는 시스템 설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수십, 수백 건의 신제품 개발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멘로 마이크로의 제품개발 및 마케팅 담당 부사장이자 공동 창립자 크리스 지오바니엘로(Chris Giovanniello)의 설명에 따르면 이 업체의 ‘디지털 마이크로 스위치’는 무게, 공간 및 성능이 특히 중요한 의료 및 산업 시스템의 니즈를 바탕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지오바니엘로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업체들도 우리처럼 이런 스위치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극한의 동작 조건에서 신뢰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실패했습니다.”
이 스위치는 무게와 크기 모두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 스위치에 비해 1000배 가량 빠른 속도로 전류나 무선 주파수를 제어할 수 있다. 스위치 여러 대를 결합하면, 성능이 대폭 향상되어 수천 볼트에서 수 킬로와트의 전력도 처리할 수 있다. 이처럼 성능을 개선할 수 있었던 것은 스위치의 전도성 금속을 웨이퍼 위에 정밀하게 배치할 수 있는 특허 공정 덕분이다. 수백 개의 스위치를 10센트 동전보다 작은 칩에 장착하여, 대형 기계나 소형 전구를 켜고 끄는 전력 제어가 가능해졌다.
이제 배터리 관리, 가정 자동화, 전기자동차, 사물인터넷 분야에 새롭게 적용할 수 있는 스위치가 탄생한 것이다. 이 기술은 데이터 전송 속도가 초당 수십, 수백 메가비트에서 수 기가비트까지도 증가하는 5G 무선통신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는 혁신기술이 될 수 있다. 멘로 마이크로는 이 새로운 스위치로 50억 달러 이상의 시장 기회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 디지털 마이크로 스위치는 시스템 설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수십, 수백 건의 신제품 개발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는 곧 또 다른 혁신의 물결입니다.” 지오바니엘로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