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 열풍은 지난 시절의 거품일 뿐인 것일까?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 닷컴(dot-coms)으로 불리던 인터넷 기업들은 천문학적 투자 유치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매출이 없는 급격한 주가 상승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러한 ‘닷컴 버블’은 투기·투매성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급속히 붕괴하였다. 한국의 닷컴 기업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한때 한국 경제의 앞날을 짊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닷컴 기업이나 그 주인공들 가운데, 오늘날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2011년 이후 10억 달러 이상의 기업 가치를 갖는 디지털 기술 기업들이 연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과거 버블을 경험한 이들은 이 현상을 또 다른 ‘테크 버블’로 바라보는 시각이 대두되는 중이다.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이들 디지털 기술 기업의 붐 역시 거품으로 끝나버릴까? GE의 제프 이멜트 회장에게 21세기 디지털 기업의 전망을 들어본다.
새로운 디지털 기술은 인프라산업에서
제프 이멜트 회장은 최근 디지털 기업에 대한 우려는 ‘디지털 기술 혁신이 이뤄낸 성과를 간과한 근시안적 안목’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소비자 인터넷의 경우 모바일 앱 시장만으로 연간 약 3천억 달러에 달하는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런 디지털 기술이 산업 분야에 적용되면 향후 10년간 약 8.6조 달러의 생산성 증대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미래의 소비자 인터넷 시장 추정 규모의 두 배를 뛰어넘는 엄청난 크기이다. 특히 이렇듯 산업에 적용되는 디지털 기술은,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같은 소비자용 인터넷 어플리케이션 수준이 아니라, 발전이나 헬스케어, 운송 등 인프라 산업 전반의 생산성 혁신에 기반을 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산업 분야의 디지털 혁신은 산업용 앱 시장(Industrial App Economy)으로 대표될 수 있다. 이 시장은 이제 막 시작 단계에 있으며, 아직은 소비자 앱 시장의 10년 전 규모에 불과하다. 하지만 성장 잠재력을 놓고 본다면, 산업용 앱 시장의 잠재력이 훨씬 크다. 1990년에서 2010년 사이 산업 분야의 생산성은 평균 4% 증가했으나, 2011년 이후부터 1%대로 급격히 떨어졌다. 이 생산성 정체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이 바로 디지털 소프트웨어 기술에 기반을 둔 산업용 앱이라고 제프 이멜트는 설명한다.
그 동안 정보기술(IT)과 연결성(Connectivity)에 집중한 소프트웨어 산업의 부가 가치 창출은 단지 5%의 불과했다. 하지만 기계나 장비 등에 사용되는 운영 기술(Operations Technology, OT)에 소프트웨어 기술을 적용하면 95%의 추가 가치 창출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산업 생산성의 새로운 시대, 다시 말해 ‘디지털 산업’시대가 열리게 된다.
디지털+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
디지털 산업 시대란 인프라 산업의 거대한 기계들이 소프트웨어로 인해 점점 더 강력하고 똑똑해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GE는 기존의 산업을 상징하는 물리적 기계인 항공기 엔진, 발전용 터빈, 의료용 MR 스캐너 등을 디지털화해, 그에 상응하는 가상 모델인 ‘디지털 트윈’을 만들었다. 이렇게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모델링 함으로써 해당 기계의 지속적인 점검과 업그레이드가 훨씬 더 예측 가능하고 최적화된 방법으로 가능해졌다. 바로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가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항공기 엔진에서 발전소, 풍력 터빈에 이르는 첨단 기계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은 새로운 혁신의 물결을 만들어 낼 토대가 된다. 최근 GE가 산업용 클라우드 플랫폼인 프레딕스(Predix™)를 세계 최초로 출시하면서 산업용 앱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렸고, 내년까지 약 2만 명의 개발자들이 이 플랫폼을 활용해 산업인터넷 솔루션 개발에 참여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기업은 날씨, 계절, 시간 등 여러 환경 요인이 산업용 기계의 성능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앱을 개발할 수 있다. 이 앱을 이용해 기상예보에 맞춰 산업 기계의 성능을 예측하고 최적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기관차 연료의 연소 데이터를 분석하여 열차의 최적 운행 속도를 실시간으로 철도회사에 제공해 연료 소비를 최소화하도록 돕는 앱을 개발할 수도 있다.
“앞으로는 소프트웨어를 핵심 역량과 결합하지 않는 산업과 기업은 붕괴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대신 ‘디지털 산업 기업’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기업이 등장하여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빠른 혁신과 성장을 이뤄나갈 것입니다.” 제프 이멜트 회장의 전망이다.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서
산업인터넷은 세계 GDP를 2030년까지 15조 달러 가까이 증가시킬 전망이다. 산업인터넷은 거대 기업도 스타트업처럼 빠른 속도로 움직이게 할 수 있고, 기존의 산업 기계들을 인터넷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는 거대한 혁신 기회이다. 이런 혁신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산업계가 더 개방적인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GE는 파트너 및 고객사들과 함께, 개방형 표준과 그에 따른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새로운 발명은 언제나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탄생한다. 새로운 진보를 향한 디지털 산업 혁명은 현재진행형이다. 만일 우리에게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상상력의 한계일 뿐일 것이다. “규칙에 얽매이지 마라. 우리는 실제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에디슨의 말을 다시금 기억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