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코의 순록 루돌프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남달리 빨간 코가 밝게 빛나기까지 하는 루돌프는 그 유별난 코 때문에 사슴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그러다 1년에 단 하루 열심히 일하는 날인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필 짙은 안개로 썰매가 나가기 곤란해진 산타 할아버지가 루돌프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이 왕따 출신 순록이 일약 스타가 된다. 조명과 길잡이 역할을 겸한 멀티 플레이어로 맹활약을 펼친 루돌프는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즐거운 노래의 주인공이 되어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노래 속에 나오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GE의 RNP(Required Navigation Performance) 시스템(링크)이 있었더라면, 그래서 산타 할아버지의 썰매가 상황에 맞게 최적화된 항로와 운행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면 루돌프의 전설은 생길 수 없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이 유명한 순록 루돌프의 탄생에 GE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빨간 코의 순록 루돌프는 GE의 중역이었던 윌리엄 살로프(William Sahloff)의 도움으로 처음으로 TV에 등장했다. 그 당시 살로프는 몰랐겠지만, 그로부터 불과 2~3년 전 GE의 한 엔지니어가 연구소에서 빨간색 LED 발명에 성공했었다. 말하자면 루돌프의 TV 출연을 위한 준비가 된 셈이랄까.
살로프는 1950년대 GE의 가전 부문 부사장이었다. GE에 입사하기 이전 통신판매 기업인 몽고메리 워드에서 마케팅 임원이었던 그는, GE에서도 제품을 널리 알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GE가 스폰서하는 TV의 크리스마스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어 GE의 제품을 홍보하는 기획이 바로 그것이었다. 1964년 12월 6일 NBC에서 방송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형식의 “빨간 코의 순록 루돌프”에서는 요정들이 GE의 헤어 드라이어, 진공청소기, 자동 통조림 오프너 등의 가전 용품을 사용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이 프로그램의 바탕이 된 것이 바로 로버트 메이가 쓴 시에서 출발해 인기를 얻은 크리스마스 노래 “빨간 코의 순록 루돌프”였다.
로버트 메이는 살로프가 몽고메리 워드에서 함께 일하던 카피라이터였으며, 1939년 회사의 소책자에 루돌프에 대한 시를 발표했다. 나중에 그는 루돌프의 저작권을 가지게 되었고, 살로프는 이 이야기를 더 널리 알리고 퍼뜨리라며 로버트 메이를 격려하곤 했다. 1964년의 이 TV 특집 프로그램은 루돌프의 탄생 25주년을 축하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방송 이후 이 프로그램은 큰 인기를 얻어서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해마다 방영되고 있다. (물론 현대에 방영되는 것은 최초의 판본이 아닌 디지털 리마스터링 HD 버전의 프로그램이다)
TV 프로그램에서 루돌프는 노래의 내용보다 더 많은 모험을 겪으며 시련을 넘어선다. 남과 다른 코 때문에 겪어야 했던 어려움도 등장하며, 그 과정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난다. 하지만 루돌프가 이 모든 과정을 극복하고 사랑받는 순록이 된 것은, 자신의 ‘단점’이던 빛나는 빨간 코 덕분이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GE가 대중들에게 조명의 가치를 홍보해야 하던 시절도 있었다. GE가 이 프로그램에서 루돌프가 빨갛게 빛나는 코로 위기를 이겨내는 과정을 정성 들여 표현하려 했던 데에도 시대적 배경이 작용했던 것이다.
루돌프의 빨간 코처럼 GE의 LED는 올해도 세상의 곳곳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사람이 만든 인공적인 빛의 세계를 처음으로 개척했던 GE는, 빛나는 코로 나쁜 날씨 속에서 산타의 썰매를 이끌었던 씩씩한 루돌프처럼, 사람들의 미래를 열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