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화항공(China Airlines)을 비롯한 여러 항공사의 777 기종에 장착되어 있는 GE90 엔진.
닉 크레이(Nick Kray)의 직업은 예술과는 거리가 멀다 할 수 있는 GE엔지니어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피카소, 모네와 같은 세계적인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전시되어 있다. 10여 년 전, MoMA의 디자인 컬렉션에 그가 제작에 참여한 GE항공의 GE90 제트엔진 팬 블레이드가 선정되었던 덕분이다.
이 제트엔진은 CMC, 즉 탄소섬유 복합소재(Carbon-Fiber Composite)로 제작되었다. 오닉스 같은 검은 색에 물결 모양으로 구부러진 엔진 팬 블레이드의 곡선은 보기만 해도 즐겁다. 하지만 크레이는 이 팬 블레이드가 더 이상 첨단 기술 제품이 아니라고 말한다. GE의 엔지니어들은 이미 새로운 4세대 기술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탄소섬유 복합소재 제트엔진 팬을 만들다
크레이는 GE항공의 복합소재 설계 부문에서 컨설팅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1990년대 그는 에폭시 수지와 탄소섬유를 활용하여 GE에서 가장 큰 제트엔진의 전면 팬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다. 이는 당시 GE의 명운을 건 프로젝트였다.
탄소섬유 복합소재를 사용한 블레이드가 개발되면서, GE항공의 항공우주공학자들은 GE90을 설계할 수 있었다. GE90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엔진이다. 또한 GE항공에 가장 많은 수익을 가져다 주는 엔진이다.
크레이는 이 새로운 엔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GE항공의 경쟁 기업에서는 티타늄과 철을 사용하여 제트엔진 팬을 제작합니다. GE항공의 일부 직원들마저 복합소재 사용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이었습니다. 우리 이전에는 그 누구도 이런 시도를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 기술은 매우 어려워서, 오늘날까지도 상용 복합소재 팬 블레이드를 생산하는 유일한 기업은GE뿐이다. 이 블레이드는 GE90과 GEnx 제트엔진의 부품으로 사용된다. 이 중 GEnx 엔진은 보잉 ‘787 드림라이너’와 ‘747-8’ 기종에 장착되고 있다. 복합소재 덕분에 GE의 엔지니어들은 엔진의 무게는 줄이고 효율은 높이는 블레이드를 설계할 수 있다. 항공사의 입장에서도 새로운 소재의 채택으로 엔진의 무게가 줄어들면서 연료 소비 절감이라는 이점을 누릴 수 있다.
크레이와 연구팀은 이미, 현재까지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의 기술을 연구하기에 바쁘다. 이들은 GE항공의 차세대 최대 제트엔진인 GE9X에 사용될 4세대 팬 블레이드를 개발 중이다. GE9X 엔진은 보잉의 차세대 광동체 항공기(Wide-body Jet)인 ‘777X’에 독점 사용될 예정이다.
GE는 이미 280억 달러에 달하는 700기의 GE9X 제트엔진 수주를 받고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 성장 중인 중동 국적 항공사 에미레이트, 카타르, 에티하드를 비롯하여 루프트한자 독일항공, 홍콩의 캐세이패시픽, ANA 전일본공수 등이 엔진을 주문했다. 2015년 두바이 에어쇼에서는 에미레이트항공에서 150기, 카타르항공에서 50기,에티하드항공에서 25기를 주문했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자사의 항공기에 GE9X을 도입후 유지보수를 위해 GE항공과 12년간 16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이제는 4세대 기술이다
4세대 탄소섬유 복합소재 블레이드에는 새로운 특징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기존보다 단단한 탄소섬유를 적용함으로써 더 길고 얇게 제작되었으며, 블레이드 끝 쪽에 특수 건축용 유리 섬유 복합소재가 적용되어 충격에너지를 더 잘 흡수한다. “탄소섬유는 매우 단단하지만 유연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새나 어떤 물체가 블레이드에 충돌할 경우 내부에 충격파가 발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유리 복합소재는 변형이 용이하기 때문에 블레이드에 가는 충격을 줄일 수 있습니다.”라고 크레이는 밝힌다.

차세대 엔진 GE9X의 이미지 스케치. 22개의 팬 블레이드가 장착된 GE90와 달리, GE9X에는 4세대 탄소섬유 복합소재 기술이 적용된 팬 블레이드가 16개만 장착된다.
또한, GE는 현재 GE90과 GEnx 블레이드에 사용되는 티타늄 리딩 엣지(Leading Edge)를 철로 교체할 계획이다. 강도가 높은 철은 얇은 블레이드의 모양을 유지하여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크레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항공공학에 관한 한, 소재나 부품은 얇으면 얇을수록 좋습니다. GE는 언제나 인간이 달성할 수 있는 최상의 성능을 구현하고자 노력합니다.”

GE 연구팀은 차세대 GE9X 제트엔진 블레이드를 축소한 모델을 활용하여 보잉 테스트 시설에서 실험을 거치고 있다. (이미지 저작권: GE항공)
22개의 블레이드가 탑재된 GE90 제트엔진과 달리, GEnx 엔진은 18개, 차세대 GE9X 제트엔진에는 16개의 블레이드가 장착된다. GE9X는 셋 중 가장 크면서도 블레이드 수가 가장 적다. 이처럼 얇고 적은 수의 블레이드는 엔진을 경량화할 수 있고, 회전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러한 점은 전반적인 엔진 성능에 있어서 매우 유리합니다. 저압 팬이 통째로 터빈 시스템과 결합해 최대의 성능을 낼 수 있기 때문이죠. 이것이 바로 엔지니어들이 바래왔던 제트엔진입니다.”라고 크레이가 설명한다.
블레이드의 소재가 바뀌었다고 그 아름다운 곡선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물결모양의 곡선, 전진 날개 (양력을 발생시키는 날개의 좌우 끝이 동체에 붙어있는 날개 뿌리보다 앞 쪽에 있는 날개), 위쪽의 고리(hook)와 중심부의 볼록한 부분(belly)은 여전하다.
도전과 실험의 역사를 딛고
GE항공의 탄소섬유 복합소재 GE90 팬 블레이드는 무(無)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 앞서 1980년대에 GE는 실험용 GE36 오픈 로터(open rotor) 엔진을 개발한 바 있다. 이 엔진은 터보팬과 터보 엔진의 특성을 결합한 독특한 하이브리드 디자인에 당시에 이미 탄소섬유 복합소재 블레이드를 사용했다.

GE36은 복합소재 블레이드를 사용한 최초의 GE 엔진이다. 이때 블레이드는 엔진 바깥쪽에 있었다. (이미지 저작권: GE항공)
이 엔진은 기존에 제작된 유사한 크기의 제트엔진과 비교하여 30% 이상의 연료 절감 효과가 있었지만, 상용화되지는 못했다.
GE의 연구진은 그 동안 수많은 도전과제을 헤쳐왔다. 보통 티타늄 블레이드는 새와 같은 장애물과 충돌하면, 에너지를 흡수하여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평범한 복합소재를 이용하면 이런 경우 블레이드가 갈라지고 부서질 가능성이 있다. 크레이는 “우리는 새로운 물질이 충격에 어떻게 반응할 지 알 수 없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연구진은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 비, 눈, 우박을 동반한 폭풍 등 수많은 경우를 가정하여 테스트를 집중적으로 진행했다. 테스트는 오하이오 주 피블스(Peebles)에 위치한 GE 제트엔진 실험 시설과 라이트 패터슨 공군 기지 (Wright Patterson Air Force Base)에서 시행됐다. “우리는 거의 매일 테스트를 진행했고, 실험 결과를 토대로 변화를 적용했습니다. 테스트를 통해 복합소재의 내구성을 직접 확인하므로써 소재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1993년, GE 연구팀은 블레이드 디자인에 적합한 소재와 설계방법은 찾아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복합소재를 생산하는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GE항공은 유럽의 제트엔진 협력 기업이자 프랑스 항공 기업인 스넥마(Snecma)와 손을 잡았다. 스넥마는 첨단 복합소재를 제작한 경험이 있었다. GE항공과 스넥마는 CFAN라는 합작기업을 설립하고 텍사스 주 산 마르코스(San Marcos)에 새로운 복합소재 공장을 세웠다.
그러나 여전히 탄소섬유 복합소재 블레이드의 개발은 녹록하지 않았다. “복합소재의 생산 과정에는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해야 하는 작업들이 있습니다. 이 소재는 화학적 변화를 겪으며 움직이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이를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GE90 제트엔진에는 1기마다 22개의 탄소섬유 복합소재 블레이드가 장착된다.
GE90-115B는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엔진이자, 가장 강력한 제트엔진이다. (이미지 저작권: GE항공)
연구팀은 X-레이, 초음파, 레이저와 그 밖에 여러 도구를 활용하여 블레이드 하나하나마다 결함 유무를 검사한다. 초기에는 단지 30%의 제품만이 테스트를 통과했지만 지금은 97%의 제품이 테스트를 통과한다.
세계에서 가장 우아하고 강력한 엔진을 위해
텍사스에서 근무하는 GE의 엔지니어들은 복합소재를 연구 및 개발만 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관계 당국 담당자나 보잉 등 항공기 제작사를 상대로 복합소재 기술의 장점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그 결과, 보잉사는 복합소재 블레이드가 탑재된 엔진을 자사의 장거리 제트기 ‘777시리즈’에 사용하고 싶어했다. 최초의 복합소재 블레이드를 장착한 제트엔진은 1995년에 출하될 예정이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시간과 싸워야 했습니다. 모든 것을 빠른 속도로 배워나갔죠” 크레이는 이렇게 회고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시도는 성공했다. GE90의 팬 지름은 이전에 출시된 제트엔진보다 큰 128인치(약 3.25미터)였음에도 복합소재를 사용한 덕분에 무게를 400파운드(약 181.4킬로그램)이나 줄일 수 있었다. 차세대 제트엔진 GE9X 팬 지름은 이보다 조금 더 큰 134인치(약 3.4미터)가 될 예정이다.

GE항공의 차세대 제트엔진 GE9X 엔진이 장착된 보잉 차세대 여객기 777-9 랜더링 이미지. (이미지 저작권: GE리포트)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지난 1995년 2월, GE90 제트엔진과 복합소재 블레이드를 인증했다. 데이비드 조이스(David Joyce) GE항공 대표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GE90 제트엔진은 세계 항공산업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이로써, 믿을 수 없을 만큼 효율적이고, 기존의 4발이 아닌 쌍발 엔진이 장착된 광동체(Wide Body) 항공기 시대가 왔습니다.”
GE90 엔진은 자신의 강력한 파워와 우아함을 당당히 뽐내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지난 2002년 12월, GE90-115B 엔진은 127,000파운드(약 57.6톤)의 추력을 내며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엔진이라는 기네스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초기 우주 로켓 엔진보다도 강력한 힘이다.
지난 2005년에는 GE90 제트엔진을 탑재한 ‘777’ 항공기가 또 다른 세계 기록을 수립했다. 상용 여객기로 착륙 없이 가장 긴 거리를 비행한 것이다. 이 항공기는 홍콩과 런던을 22시간 42분에 걸쳐 11,664마일(약 18,771.4킬로미터)을 비행했다. 그 뒤 2007년, MoMA가 곡선형의 복합소재 블레이드를 디자인 컬렉션에 추가했다.

캘리포니아 빅터빌(Victorville)에 위치한 GE항공 테스트센터에서 GE90 제트엔진이 가동하면서 뒤쪽에 있던 돌이 날려 가는 장면. (이미지 저작권: GE항공)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GE는 상용 복합소재 블레이드를 만드는 유일한 엔진 제조 기업이다. 크레이와 연구팀은 현재 보잉 ‘777’의 후속기종인 ‘777X’에 사용될 GE9X 엔진의 4세대 블레이드를 연구하고 있다. 차세대 ‘777X’는 가장 크고 효율적인 쌍발엔진(twin-engine) 제트 여객기가 될 것이다. “차세대 복합소재는 훨씬 더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이제 다시는 금속을 사용하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라고 크레이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