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에 다리를 붙인 듯한 모습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기계. 왠지 낯익은 모습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스타워즈>시리즈를 비롯한 수많은 SF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형태의 기계를 흔하게 보아왔다. 하지만 사진 속의 이 기계가 지금으로부터 50년전, 1960년대에 실제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1962년 GE의 엔지니어들은 군사적 용도의 “워킹트럭”을 만들었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에 ‘AT-AT워커’가 등장하기 18년 전의 일이다. 기계의 정식이름은 “Cybernetic Anthropmorophous Machine” (CAM)이며, 지프차를 밀어서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힘과, 발을 이용해 전구를 깨뜨리지 않고 툭툭 건드릴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한 제어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미 육군에서 이 기계에 관심을 보였고 GE측과 계약까지 체결했으나, 이 로봇들이 실용화되지는 못했다. 워킹트럭과 관련된 기술은 계속 발전하여, 오늘날에는 여러 기기에 부착되어 능력을 발휘하는 로봇팔의 형태로 변형되었다.

(좌)1962년의 워킹트럭과 (우)2000년대 달탐사선 로버(Rover) © NASA
흔히 예술이 기술에게 영감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GE의 ‘워킹트럭’을 보면 과연 그 말이 옳은지 궁금해진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기술이 예술에게 영감을 주는 경우도 흔하지 않을까?
역사학자이며 문화사가인 반룬은 인류의 발명은 결국 인간의 감각을 연장하고 확대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보았다. 사람의 시각을 확장하다 보면 멀리 있는 것을 보여주는 기계, 작은 것을 크게 보여주는 기계 등이 발명된다는 설명이다. 기술적인 상상력의 본질도 그렇다. 사람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연장하려는 시도들이 수많은 기계와 기술을 만들어냈다.
여기, 또 한 장의 흑백사진이 있다. 사진만 보면 <아이언맨>이나<엑스맨> 같은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아니면 오래 전 유행했던 <바이오닉맨> 즉 <600만불의 사나이>나 <소머즈>같은 드라마 시리즈 장면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역시 1960년대 초, GE에서 실험적으로 제작했던 로봇팔의 모습이다. 과학은 이렇게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예술적 상상력을 앞지르며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실험 단계에 그쳤으나, 1960년대에 등장한 GE의 이런 로보틱 수트들을 보면 ‘기술이 인간의 미미래 개선할 것이다’라는 긍정과 신념을 느낄 수 있다. 당시에 이런 기술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이런 실험들은 현실 속에 구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여러 나라의 많은 기업들은 사람의 몸처럼 움직이면서 능력은 더 뛰어난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산업 현장부터 의료 분야까지 관련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야 역시 점점 늘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인간의 능력이 극대화되는 공상을 했다.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물위를 걷고, 빠른 속도로 달리거나 강한 힘을 가지는 상상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했을 법하다. 이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자 한 사람들이 예술가들과 기술자들이다. 어쩌면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몽상가’라는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몽상가들이 있어서 세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GE의 슬로건은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이다. 슬로건만 보면 여느 기업들의 평범한 구호와 크게 다르지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GE는 이미 백여 년 전부터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구체적인 실천’과 ‘실험’을 해오고 있다. 그 실험과 실천 가운데는, 우리에게 소개되는 성공사례 못지않게 실험으로 그친 사례 역시 많을 것이다. 그런 실험적인 상상력들이 결국엔 우리의 일상생활과 미래를 바꾸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