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바이에른 주의 아름다운 마을, 밤베르크(Bamberg)에는 맥주 양조장이 9곳이나 있다. 이 마을에 깃든 맥주에 얽힌 전설은 숱하게 많다. 밤베르크의 명물, 스모크 비어(smoke beer)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이 맥주는 아마 우연히 발명된 것으로 보이는데, 양조장에 불이 나 연기가 쌓아 둔 맥아 더미를 덮쳤다. 짠돌이 양조장 주인은 연기를 머금은 이 곡물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이용해 주조했는데, 이것이 향기로운 거품을 머금은 호박 빛 맥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술은 동네 맥주집에서 예상치 못한 인기를 끌었다.
밤베르크 사람들은 요즘도 맥주 양조계의 ‘게임 체인저’ 급 발견을 해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더 이상 우연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기술에 의한 발견이다. 밤베르크의 유명 양조 장비 제조업체, 카스파 슐츠(Kaspar Schulz)는 GE와 협력해 3D 프린터를 양조 과정에 도입했다. 카스파 슐츠의 연구 개발 책임자 요르그 빈커르트(Jörg Binkert)는 3D 프린터로 만든 매끄러운 부품을 도입하여, 양조 과정 초기에 투입되는 시간을 줄여 궁극적으로는 수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맥주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 특별한 부품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양조의 기초에 대해 간단히 먼저 알아보자. 모든 발효 과정 이전에는 ‘라우터링(lautering, 맥즙 여과)’이라 부르는 중요한 단계가 선행된다. 헹굼 또는 정화를 의미하는 독일어 ‘abläutern’에서 파생된 단어로, 이 과정을 통해 맥주 양조장은 맥아를 곡물 찌꺼기와 당분과 단백질이 풍부한 맥아즙으로 분리한다. 맥아즙은 발효를 통해 맥주가 된다.
라우터링은 홍차를 우리는 것과 비슷하다. 라우터 툰(lauter tun)이라 불리는 거대한 스테인리스 용기를 가득 채운 곡물 사이로 물을 흘려보낸다. 당분은 맥아에서 물로 천천히 녹아든다. 라우터 툰은 거대한 차 여과기와 비슷하다. 추출 주전자는 맥아 즙을 모으고, 침전된 남은 곡물은 버리기 위해 따로 모은다. 라우터 툰에서는 당분을 추가로 추출하기 위해 곡물 위로 뜨거운 물을 붓는 스파징(sparging, 살포) 과정도 진행된다.
홍차를 우릴 때, 티백을 짜거나 잎이 컵 안에서 소용돌이 치며 돌도록 저어주면 더 빠르게 차를 우릴 수 있는 것처럼, 카스파 슐츠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라우터링과 스파징을 가속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들이 발견한 해답은 배럴의 바닥을 긁는 기술이었다.
카스파 슐츠는 일찍이 라우터 툰을 채운 무거운 곡물을 뒤섞는 용도의 갈퀴 블레이드에 주목했다. 빈커르트는 갈퀴 블레이드로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디자인의 일부를 뮌헨의 GE 팀에 공유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 협업의 결과는 밤베르크 양조 업계의 전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GE엔지니어들은 적층제조를 활용해 마치 도로 제설기처럼 느리게 움직이던 기존의 갈퀴를 스마트 스프링클러로 탈바꿈시킬 새로운 블레이드를 디자인했다. 이 블레이드 측면에 있는 마치 금속 정맥과 같은 내부 채널을 통해 물을 흘려보낼 수 있어, 곡물을 잘게 써는 동시에 슬러지의 심층부에 수분을 주입한다. 뮌헨의 GE애디티브 고객경험센터(Customer Experience Center) 리더, 매튜 보몬트(Matthew Beaumont)는 말한다. “이 블레이드로 사용한 곡물을 더 효율적으로 헹궈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차를 우릴 때 찻잔에 담근 티스푼에서 따뜻한 제트 물살이 나온다고 생각해 보라. 비슷한 원리다.

GE애디티브 선임 리드 엔지니어 베네딕트 뢰들(Benedikt Roidl)은 3D 프린트된 블레이드가 “유도된 소용돌이 유동장(flow field)”을 만들어 사용한 곡물을 “동적으로 느슨하게” 만드는 원리라고 설명한다. 보몬트는 “이 적층제조로 만들어진 채널은 난류를 만들어 곡물에 물을 넣으면서 곡물 더미 사이로도 쪼개 흘려 넣습니다.”라고 덧붙인다. 뢰들과 보몬트가 사용하는 어휘가 보통 제트 엔진 제조에서나 쓰일 법한 말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GE팀이 이 블레이드를 디자인할 때 항공우주 산업에서 쌓은 지식과 전문성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기역학적 노하우 덕분에 라우터링과 스파징 과정에 걸리는 시간을 거의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기존에는 곡물 잔여 당분 농도가 폐기 대상 수준인 2% 미만으로 떨어질 때까지 약 2시간이 걸렸다. 빈커르트는 말한다. “이를 1시간으로 줄였습니다. 같은 양조장에서 만드는 맥주 양을 2배로 늘릴 수 있다는 의미죠. 일반 부품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종이에 그린 아이디어를 실존하는 금속 부품으로 만들어 낸 것에 보몬트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는 GE애디티브의 컨셉 레이저 제품군의 주력 제품인 M2가 미세 금속 분말로 블레이드를 인쇄하는 데까지 24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설명한다. M2는 레이저를 사용해 금속 파우더를 녹여 복잡한 형태의 3D 부품으로 만든다. 마치 잿더미를 헤치고 오르는 불사조처럼 바로 눈 앞에서 블레이드가 서서히 솟아오른다는 의미다. 보몬트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금속 조각이 형태를 잡아가는 과정을 바라본다. “이 과정은 몇 번을 봐도 신기하네요.”
그는 또한 훌륭한 주변의 훌륭한 이웃과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컨셉 레이저 시설도 바로 리히텐펠스(Lichtenfels) 북부에 있고, 일부 저희 팀원은 밤베르크 양조장과 관계를 갖고 있어, 현장 지식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3세기에 걸친 현장 지식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카스파 슐츠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 장비 제조업체다. 독일 연방이 성립하기 2세기도 전인 1677년부터 카스파 슐츠는 이미 잘 벼린 구리 주전자를 양조장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카스파 슐츠는 이제 “양조, 발효 용기에서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맥주 양조 키트를 만들고 있다.
이 3D 프린팅 갈퀴 블레이드는 카스파 슐츠의 적층제조 여정의 첫 단계일 뿐이다. 빈커르트는 말한다. “아이디어 측면에서는 이제 첫 걸음을 내딛었다고 생각합니다. 맥주 산업의 다음 도전 과제는 연속 양조입니다. 지금까지는 모두 실패했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기계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마 3-4년 안에는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까지 보몬트와 GE애디티브의 팀은 가장 엄격한 과학적 방법만을 사용해 설계를 입증하고자 한다. “실제 맥아즙의 화학적 분석을 통해 이점을 검증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물론 마셔도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