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인물 뒤쪽으로 보이는 커다란 원통형 장치의 용도는 과연 무엇일까? 얼핏 보면 작은 터널처럼 보이는 이 장치는 다름 아닌 오븐(Oven), 정식으로는 오토클레이브(Autoclave)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 초대형 오븐은 빵 대신 항공기 부품을 구워낸다. 미국 공군에서 사용하고 있는 C-5 갤럭시 수송기의 동체 패널에 들어가는 복합 레이어가 이 속에서 구워져 나온다. 사진 속 인물은 미국 조지아주의 로빈스 공군기지 패널작업장 총책임자인 루시온 포어먼(Lucion Foreman)인데 오토클레이브의 크기를 보여주려고 서있다. (참고로 C-5 갤럭시는에는 GE TF39 제트엔진 4기가 장착된다)

로빈스 공군 기지 패널 작업장 총책임자 루시온 포어먼이 C-5 갤럭시 수송기 패널을 구워내는 오토클레이브(오븐형 시설) 앞을 걷고 있다. (사진 저작권:Sue Sapp/U. S. Air Force)
수많은 상업 및 군사 시설에서 이런 형태의 오븐을 사용해, 샌드위치처럼 층층이 쌓은 탄소 섬유, 벌집형상 금속, 고분자 (Polymer) 등의 재료들을 구워 항공기 동체와 날개 부품을 제작한다. 이 부품들은 오븐 속에서 화씨 750도(섭씨 400도)가 넘는 온도로 가열되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재료들이 튼튼하고 강도 높은 하나의 층으로 합쳐진다. 항공산업에서는 언제나 더 가벼운 부품, 더 가벼운 비행기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여러 겹의 재료를 하나로 만드는 이런 과정은 부품의 경량화를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발열체를 작동시키고 오븐 내부의 온도를 높여 재료를 필요한 온도까지 가열하는 모든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최근 MIT의 엔지니어들이 이런 큰 오븐을 쓰지 않아도 되는 해결책을 발견했다. 오븐을 대체할 신기술은 필름이다. 가공하기 전, 층층이 쌓인 복합소재 표면에 특수 필름을 붙이는 것이다. 전류를 가하면 필름은 재료를 단일층으로 경화시키기 충분한 온도까지 가열된다. 가열 과정에서 필름은 완성 부품의 표면에 부착되는데, 소재의 특성상 완성품의 무게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 새로운 방식을 사용할 경우 기존의 오븐 방식에 비해 겨우 1/100의 에너지를 소모하면서도 동일한 경도의 완성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테스트에서 검증되었다.

탄소 나노튜브 소재의 필름. 이 필름을 이용한 공정은, 기존의 오븐형 제조 공정과 대비했을 때 겨우 1퍼센트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 신기술을 통해 항공기의 날개와 동체에 쓰이는 고강도 복합소재 제조에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사진 저작권: Jose-Luis Olivares/MIT)
개발팀 책임자인 항공 엔지니어 브라이언 와들(Brian Wardle) 은 새로운 공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에어버스 A350이나 보잉 787 드림라이너같은 항공기 동체를 구워내려면 4층 높이의 오븐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하지 않은 인프라에 수천만 달러를 써야 하죠. 하지만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면 필요한 부분에 열을 가할 수 있습니다. 조립할 부품에 직접 접촉할 수 있어요. 이 기술을 쉽게 이해하려면, 저절로 구워지는 피자를 생각해 보세요. 오븐에 넣는 대신 피자에 플러그를 꽂으면 피자가 저 혼자 구워지는 겁니다.”
이 새로운 필름은 정렬된 탄소 나노튜브(Aligned Carbon Nanotubes, A-CNT)로 만든다. 탄소 나노튜브는 열 전도성과 전기 전도성이 높으면서 강도도 높은 결정성 탄소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실험에 의하면 이 필름은 전부 연소되기 전까지 화씨 1000도(섭씨 537도)에 달하는 열을 방출했는데, 이는 최첨단 복합소재 층을 하나로 융합하기에 충분한 온도다. 브라이언 와들은 복합소재가 사용되는 모든 산업 분야에 이 신기술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전압이 가해지면 필름에서 열이 발생하여 복합소재에 직접 열을 가하게 된다. 기존의 대형 오븐 시설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사진 이미지:Jose-Luis Olivares/MIT)
얼마 전 <Applied Materials & Interfaces> 저널에는 복합재료 가공 필름 기술 개발팀이 발표한 논문이 게재되었다. 여기에서 이 신기술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기존의 고분자 시스템의 숙성 (Curing) 기술은 에너지 손실과 기하학적 구속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정렬된 탄소 나노튜브(A-CNT)로 구성된 나노구조 저항 히터를 사용하여, 오븐형에서 벗어나 높은 확장성을 지닌 가공 기술을 개발하게 된 것은 그런 단점을 극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 실험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기존의 오븐을 활용하는 기술과 비교하였을 때, A-CNT 융합 히터를 사용할 경우 복합소재 같은 고분자 구조물을 생산하는 데 요구되는 에너지 사용을 수십 배나 줄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