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문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 앞에선 대부분 탄성을 터뜨리곤 한다. 시원한 크기, 보통 지름 40cm 이상 되는 백자 항아리를 달항아리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우아하고 간결한 형태, 아무 장식이 없는 백색 바탕이 현대인의 취향에도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달항아리는 대부분 경기도 광주 금사리의 가마에서 구웠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는 1726년에서 1751년까지 도자기가 생산되었는데 달항아리 외에도 여러 형태의 백자와 청화백자 도자기가 만들어졌다 한다. 달항아리들은 대개 여러 종류의 액체(장이나 젓갈, 술 등)를 담는 용도로 실생활에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달항아리. 표면에 있는 얼룩으로도 유명하며, 몸통의 형태가 거의 완전한 구형을 그리고 있다. 형태와 완성도에서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달항아리 즉 백자 대호에 대한 사랑은 시대와 국경을 넘은 지 오래다. 화려하게 장식된 큰 항아리들은 궁중 연회에도 등장했던 반면 이 심심한 백자 항아리들은 20세기가 될 때까지 평범한 실용품 이상의 대우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면서 조선의 달항아리는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학자, 골동품 애호가, 예술가 등의 사랑을 한 몸에 받기 시작했다. 그 아름다움을 새롭게 해석해서 담아내려는 근현대 도예가와 조각가, 사진가, 화가 등의 창작물 역시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달항아리. 영국인 도예가 버나드 리치가 1935년 조선에서 구입해서 소장한 것이다. 그의 사후 제자 루시 리가 물려받았고, 1998년 경매에 나온 것을 한빛문화재단이 출연한 기금으로 대영박물관에서 구입하였다.
White porcelain ‘moon jar (높이 47cm, 조선시대 (17-18세기), The British Museum) http://goo.gl/xHdfJV
보통 사람들의 선입견과 달리 달항아리의 형태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몸통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각각 따로 만들어 붙인 후, 전체 모양을 다시 다듬는다. 한국의 전통 도예에서는 작가가 발로 차서 돌리는 발 물레를 쓴다. 사람이 돌리는 발 물레의 속도는 달항아리처럼 커다란 도자기가 한 번에 이어서 완성될 수 있을 만큼 빠르지 못하다. 달항아리라는 이름처럼 온전하게 둥근 형태의 항아리가 많지 않은 상황은 이런 제작 과정 때문이다. 현대에 남아 있는 달항아리들 가운데 많은 수가, 몸통의 가장 굵은 부분, 즉 아래와 위를 접합한 부분이 둥글기 보다는 수직선에 가깝다. 항아리를 수직으로 잘라 단면도를 그렸을 때 원형보다 팔각형에 가까운 모양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형태를 완성한 항아리도 장작불을 사용한 가마에 들어가 굽는 과정을 거치면서, 크기로 인한 무게 및 장력과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 앉거나 터지고 변형되기 일쑤다. 현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 달항아리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손으로 흙을 반죽하고 발로 물레를 돌려 모양을 만들고, 장작으로 가마에 불을 지폈던 조선 시대에, 달항아리의 크기는 수많은 우연과 변수가 작용하며 완성한 최대치였을 수 있다.

일본 교토시(京都市) 고려미술관에 소장된 달항아리. 일본에 유일한 한국 고미술 전문미술관인 고려미술관은 재일교포 고(故) 정조문씨가 평생 동안 모은 작품들로 개관한 곳이다. 정조문 이사장은 교토에서 우연히 조선의 백자 항아리를 만나 첫눈에 반했고, 값을 나눠 치러가며 그 달항아리를 구입했다. 이것이 그의 일생에 걸친 컬렉션의 시작이었다.
白磁 壺 (높이 28.5cm, 조선 시대), 高麗美術館. 사진 박정훈©
최근 테크놀로지 분야에서 보통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는 기술은 역시 3D 프린팅이 아닐까 싶다. 3D 프린팅으로 완성한 이런저런 물건들이 자주 소개되고, 그 기술의 가능성에 대해 수많은 기대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3D 프린팅이라고 하면 아직은 규모가 작은 실용품에나 적용되는 기술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첨단 기술로 시대를 이끌어온 GE의 경우, 3D 프린팅이 적용된 분야에서도 스케일과 착상이 남다르다. 항공기 엔진에 3D 프린팅 기술로 만든 연료 노즐이 들어가고, 고온이거나 표면이 불균일한 엔진이나 터빈 내부에 직접 다이렉트라이트 기술을 이용해 센서를 설치하기도 한다. 항공기 날개에 엔진을 부착하는 브라켓을 3D 프린팅 기술로 만들어 화제를 낳기도 했다.
3D 프린팅의 개념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조선의 달항아리 역시 비슷한 개념으로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질 법하다. 전통 기술처럼 상하를 분리해 완성한 후 조립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체를 순차적으로 적층하여 항아리를 만들 수 없을까? 그렇다면 과거의 아름다운 문화 유산인 달항아리를 좀 더 완벽하고 아름답게 현대에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현대의 도예 물레는 전기로 돌리기에, 3D 프린팅처럼 순차적인 적층 방식으로 달항아리를 만드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런데도 달항아리를 재현하는 현대 도예가들은 아직까지 대부분 전통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변수가 많고 실패율도 높은 장작 가마를 선택하는 작가들도 있다. 전통의 ‘맛’을 내기 위해서다.
조선 시대 달항아리들에서는 완벽한 대칭 형태나 결점 없는 색깔 등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오히려 그 ‘완벽하지 않음’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서 ‘영혼을 가진 도자기’라는 칭찬을 들으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현상을 예술의 역설이라고 해야 할까. 새로운 기술이 상용화되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쓰이게 되면 예술은 앞으로 또 어떤 진화를 겪게 될 것인가.

일본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 소장된 달항아리. 이 항아리는 원래 나라시(奈良市) 도다이지(東大寺) 간논인(觀音院)의 주지 스님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소설가 시가 나오야(志賀直哉)에게서 선물로 받았던 것이라 한다. 1995년 간논인에 괴한이 침입하여 항아리를 훔쳐 달아나다 경비원들에게 쫓기면서 바닥에 항아리를 내동댕이치고 도주한 일이 있었다. 그 결과 항아리는 300개 이상의 파편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서는 2년이 넘는 복원 과정을 거쳐 거의 원형을 되찾은 이 항아리를 공개하였다.
白磁 壺 (높이 45cm, 지름 43.4cm, 조선 시대), 大阪市立東洋陶磁美術館, 사진 박정훈©
용인대에는 우학문화재단 소장 국보 제262호 백자 대호가 소장되어 있다. http://goo.gl/lDh6eJ
국립중앙박물관의 백자대호는 보물 제1437호로 지정되어 있다. http://goo.gl/80u94j
사진가 구본창의 홈페이지에서는 그의 백자 시리즈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http://goo.gl/gB8crK
서울미술관에서 2014년 4월 14일 ~ 8월 31일 <백자예찬: 백자, 미술을 품다> 전시회가 열린다. http://goo.gl/X2LOMt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2014년 7월 1일 ~ 10월 18일 <순백에 선을 더하다> 전시회가 열린다. http://goo.gl/50uzF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