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곰(Grizzly Bear)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캘리포니아 주의 깃발(Flag)에도 등장할 정도이다. 하지만 그 자리를 위협하는 새로운 동물이 등장했다. 바로 캘리포니아 오리(California Duck)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제 동물 오리(Duck)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캘리포니아 주 전력망에서 태양광 에너지가 공급하는 전력량의 변동 곡선이 마치 오리 목과 꼬리 모양으로 나타남을 비유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가정의 지붕과 야외에 설치된 수백만 개의 태양광 패널에서 생산하는 에너지와 주 전력망의 전력 수요관계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아래 그림처럼 오리 모양이 나타난다. 크게 두 군데에서 전력 수요의 피크치를 보인다. 하나는 오전, 또 다른 하나는 일몰 후이다.
해가 화창한 일요일이면, 전력 수요가 줄어드는 반면, 태양광 발전 에너지는 과잉 공급되어 에너지 공급 가격이 떨어진다. 이때 태양광 에너지 생산자는 오히려 전력 그리드 회사에 비용을 지불해 생산된 에너지를 가져가도록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하지만 해가 지면, 양상은 바뀐다. 발전 회사는 가스나 석탄 발전소를 신속하게 가동해 태양광 에너지가 공급하던 11,000 메가와트 만큼의 전기를 캘리포니아의 가정과 사업체에 공급해야 한다.
에릭 겝하르트(Eric Gebhardt) GE파워 전략기술 부사장은 이렇게 제안한다. “태양열 에너지 공급이 정점에 달하는 때는 정오입니다. 이 때 에너지를 저장해 두고 일몰 후에 저녁 요리를 준비하거나 TV를 보는 데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 아이디어가 최근 GE가 발표한 새로운 그리드용 에너지 저장 시스템인 GE ‘레저부아(Reservoir)’의 핵심이다. 기본적으로 전력망은 완벽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즉, 전력망이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전력의 공급과 수요가 일치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겝하르트 부사장은 “GE 레저부아를 활용하면 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분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양광 에너지가 과잉 생산될 때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은 생산을 줄이는 것뿐입니다. “라고 설명한다. GE 레저부아를 사용하면 또 다른 장점도 있다. 구름이 끼기 시작하면, 태양광 발전량은 줄어든다. 줄어든 전력 발전량을 보충하기 위해 발전소를 대기 모드로 계속 가동하게 되는데 이는 비 효율적이다. GE 레저부아는 발전소 전체를 다시 가동할 만큼 충분한 배터리 전력을 가지고 있어 이러한 대기모드를 가질 필요가 없다.
GE는 이미 작년에 “블랙 스타트(Black Start)”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캘리포니아 임페리얼 밸리(Imperial Valley)에 위치한 가스 발전소를 재가동시킨 경험이 있다. 발전소 운영자는 데이터와 GE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저장 시스템 배터리의 전압, 위상, 주파수가 전력망의 전원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동기화 프로세스를 통해 전원을 고르게 안전하게 복원 할 수 있다. 발전소가 가동되면 배터리를 다시 충전한다.
이는 발전소 운영자가 전력망을 안정화 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탄소 배출량과 비용을 절감하고, 전력망 전체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GE의 목표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GE 레저부아는 미래를 향한 큰 발걸음입니다.” 겝하르트 부사장의 설명이다.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하와이 등 태양광이 풍부한 주에서는 이미 낮 시간 동안 생성된 에너지를 저장하는 새로운 기술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애리조나 주는 2030년까지 에너지 저장 용량을 3,000 메가와트 더 늘릴 계획이며, 캘리포니아 주는 지난 가을 에너지 저장 프로젝트를 가속화시키기 위해 관련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는 캘리포니아 주가 2030년까지 재생 에너지를 통해 전기 수요의 50%를 충족시키겠다는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네비건트 컨설팅(Navigant Consulting)은 2025년까지 에너지 저장 시스템 시장이 162억 달러 규모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겝하르트 부사장은 이 과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27년 전부터 그는 천연가스와 복합 사이클 발전소가 호황에 이르기까지 에너지 산업의 변화에 앞장서 왔다. 겝하르트 부사장은 “긴 여정이었지만, 결국은 모두 에너지 생태계에 관한 것입니다. 전력망은 많은 부분으로 구성되는 복합적인 생태계입니다. 하지만 에너지 저장 시스템은 그 동안 정체되어 있는 부분이었던 게 사실입니다.”라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화력이나 원자력 발전소 등 대규모 전원으로 발전된 전력 공급량은 예측 가능했다. 변동 요인이 있었다면 소비자의 전력 요구 즉 업계 용어로 말하면 부하(Load)였다. 풍력 혹은 태양광 발전이 등장했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날도 있고 해가 구름에 가리는 날도 있는 등 기본적으로 발전량이 날씨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생태계는 훨씬 더 복잡해졌다. 따라서 저장 시스템이 있다면 그런 날씨 불확실성에 대응하고 발전 측면에서 변동폭을 안정시킬 수 있다.
엔지니어들은 100여년도 더 이전 전기를 생산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대규모로 전기를 축적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했다. 높이 차이가 나는 두 개의 저수지 사이를 물이 오가며 에너지를 축적하고 방출하는 양수발전(Pumped Storage)과 같은 훌륭한 방법을 고안해 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까지 대규모 스케일이면서 경제성이 뛰어난 배터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GE 레저부아”는 종래 기술에 대비 수명 15% 이상, 효율은 5% 향상. 미리 공장에서 조립, 시험을 수행하여 70% 설치 시간을 단축 할 수 있다. (사진: GE파워)
뉴욕 니스카유나에 위치한 GE글로벌리서치의 키스 롱틴(Keith Longtin) 제품 혁신 리더는 전기 자동차의 등장으로 배터리 부문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있으며, 태양광 에너지의 확산으로 지난 4년 동안 비용이 50%나 감소했다고 말한다. 이제, 에너지 저장이 마침내 의미 있는 것이 되고 있는 것이다. 롱틴의 역할은 GE의 여러 사업에서 “파괴적 혁신”을 불러올 수 있는 제품을 발굴하고 개발을 지원하는 것이다. 레저부아도 그 중 하나이다.
“배터리와 태양광 발전을 하나로 연계하여 날씨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와트(W) 당 1달러 이하로 태양광 에너지를 생산하고 1킬로와트(kW)당 250달러로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면, 낮 시간에는 전기를 저장하고 저녁에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파괴적인 혁신입니다.”
GE 레저부아는 모듈식 전력망 대응 배터리로 레고 블록처럼 쌓아 올려가는 것이 가능하다. 시스템 하나는 1.25 메가와트(MW)로 16,000개의 리튬이온 배터리 셀로 구성되며 4시간 동안 충분한 양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4 메가와트시(MWh)를 출력한다.
GE파워는 주로 한국의 대기업으로부터 배터리 셀을, GE글로벌리서치를 비롯한 GE의 다른 사업부로부터 주요 부품을 공급 받고 있다. 예를 들어, 레저부아는 충전 상태, 온도, 전압, 전류 등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수많은 센서가 장착되어 있다.
수집된 데이터는 엣지 컴퓨팅(Edge Computing)이라고 불리는 기술을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즉시 분석되거나 더 깊은 분석을 위해 클라우드에 있는 서버로 데이터를 전송한다. 롱틴 팀의 엔지니어는 산업인터넷용 플랫폼인 프레딕스(Predix)를 활용하여 앱을 개발했는데, 사업자는 각각의 배터리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작업을 제어하며, 배터리 수명을 최적화하여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다.
겝하르트 부사장은 “우리는 배터리 시스템에 발생하는 것을 가능한 한 상세히 보고 싶습니다. 충전-방전 사이클에서 무엇이 변화하는 지 이해하고, 기능이 저하될 시, 그것을 감지하려고 합니다. 많은 것들을 고려하여 시스템을 설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로스앤젤레스의 1,50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하는 서던캘리포니아에디슨은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발전소”의 운전을2017년 개시했다. 그 후, 6건의 산업분야 상(award)을 수상한 이 발전소는 가스터빈 외에도 GE의 배터리 시스템을 채용하여 바람이 약해 지거나 태양이 구름에 덮이면 신속하게 가스터빈을 기동시켜 전력을 공급한다. (사진: GE 파워)
배터리 관리 시스템은 탄화규소(SiC)로 만들어진 전력전자 기술을 사용한다. 탄화규소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소재인 다이아몬드와 반도체 산업의 필수 소재이며, 취급이 어려워 악명 높은 실리콘의 기능을 결합한 놀라운 소재이다. GE글로벌리서치 과학자들은 이를 상용화하기 위한 방법을 개발했다. 그들은 배터리 시스템 내부에 탄화규소를 사용하여 하나 하나의 배터리 블레이드를 보호/관리하여 방식으로, 수명을 최대 15% 연장했다. 롱틴은 이 기술이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연구팀은 태양광 패널에서 얻은 직류 전류를 배터리로 직접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직류를 교류로 변환하고 그것을 다시 직류로 바꾸는 방법은 전력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한쪽에 DC 전원 콘센트가 있고, 사용하는 장소에 따라 반대쪽에는 DC 또는 AC 콘센트가 있는 것입니다. 이 기능은 산업계의 다른 방식 대비 효율을 5% 향상시킵니다.” 롱틴의 설명이다.
레저부아 시스템은 공장에서 설비를 조립하고 테스트함으로써 설치 시간을 기존 대비 70%까지 줄일 수 있다. 겝하르트 부사장은 “20피트(약 6m)의 컨테이너를 가져 와서 기초 부분에 설치하고 거기에 다른 설비를 차례로 연결하면 됩니다.”라고 설명한다.
이미 GE의 애틀랜타 본사에서 발전소들을 모니터링 하고 있는 것처럼, 겝하르트는 디지털 원격감시 센터를 통해 모든 배터리의 정보를 통합하여 배터리 시스템 전체를 최적화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에너지 저장 시스템 시장은 기하 급수적으로 성장하고, 발전 사업자와 전력망 운영자들은 전례 없는 자유도를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 팀의 한 엔지니어는 저장 시스템을 베이컨에 비유하는 농담을 합니다. 모든 것을 더 좋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롱틴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