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하버드대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성공기업의 딜레마’라는 책을 통해 성공한 혁신가의 딜레마를 화두로 던졌다. “성공을 체험하며 성장한 기업일수록 스스로를 혁신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그 결과 경쟁력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업이라도, 큰 규모와 오랜 역사를 지니게 되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대기업 병’이나 관료주의 같은 정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제프 이멜트(Jeff Immelt) GE 회장은 “기업은 10년에서 15년마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것을 파괴할 각오로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지니고 기업 문화를 혁신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사고방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기업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세상이 인터넷이라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비즈니스는 글로벌화 되면서, 기업들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속도가 필요해졌다. 세계 곳곳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갑자기 등장하여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경쟁이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크라우드 소싱 및 마이크로 팩토리 (Micro Factory) 같은 트렌드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혁신을 실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현실의 제약을 파괴하는 양상은 더 이상 자본력과 개발력이 풍부한 대기업만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는 없게 되었다. 더 빠르고 더 나은 솔루션을 구현하고, 고객의 니즈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아이디어를 바로 구현할 수 있는 자세가 기업에 요구되고 있다.
현재 GE가 스스로 혁신에 임하는 이유는 이런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GE의 경쟁력 혁신 도구 중 하나인 ‘패스트웍스(FastWorks) ‘는 이런 혁신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새로운 경영 도구, 패스트웍스는 무엇인가?
패스트웍스는 전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패스트웍스는 <린 스타트업>의 저자 에릭리스(Eric Ries)의 컨설팅을 받아 GE가 독자적으로 이끌어낸 것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21세기에 효과적으로 비즈니스를 진행하고 경영과 개발 속도를 높여 고객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도구이자 경영 지침이다.
소프트웨어 업계에 널리 알려진 ‘애자일(Agile) 개발’이란 것이 있다. 이는 최소한의 기능으로 제품을 만들어 이를 사용자에게 배포하여 사용자들이 사용해본 경험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고, 사용자의 의견을 수렴하여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법론으로, 짧은 사이클을 빠르게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베타’ 버전으로 널리 발표하고 사용자의 의견을 반영하여 개량해온 프리웨어 사례는 우리 모두에게 이미 친숙하다.
패스트웍스는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 기업의 방식을 산업 기업인 GE가 도입해서 완성한 것이다. 가장 큰 특징은 MVP, 즉 실현가능한 최소한의 제품(Minimum Viable Products)을 만들어, 고객의 목소리를 반영하며 수정하는 것이다. 패스트웍스를 이용하여 고객을 위한 더 나은 결과를 신속하게 얻게 된다.
GE 일본에서 패스트웍스를 이끌고 있는 오쓰카 다카유키(大塚孝之)는 이렇게 말한다. “패스트웍스의 개념은 매우 간단합니다. 우선 고객이 어려움을 느끼는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제품을 만들고, 실제로 사용한 고객들과 대화를 반복하며 제품을 개선합니다. 이 과정에서 미래의 요구를 통찰해 적절한 타이밍에 반영합니다.”
패스트웍스는 구축(Build)-측정(Measure)-학습(Learn)의 3단계로 구성된다. 먼저 고객의 요구를 이해하고, 제품화에 필요한 요구 사항을 조사한다. 이 단계에서 MVPs 즉 실현가능한 최소한의 제품을 시제품으로 제작하여 고객의 의견을 듣는다. 고객의 피드백은 즉시 개발에 반영되어 제품의 개선을 낳는다. 이 프로세스가 빠른 속도로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이다.
패스트웍스 프로세스에서 최고의 품질이 아닌 제품이 세상에 출시되지 않을까라는 염려다. 특히 인프라와 의료기기와 같은 미션 크리티컬 제품을 많이 다루는 GE 같은 기업에게 매우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베타 버전 같은 개발은 분명 이전의 GE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패스트웍스에서는 시제품을 먼저 만들어본 뒤 단기간에 버전을 업그레이드합니다. 그렇다고 품질에 타협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GE는 불량품의 발생을 억제하는 식스시그마, 프로세스 낭비를 줄이는 린 경영처럼 품질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도구를 이전부터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패스트웍스로 개발된 제품도 당연히 이런 도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오오츠카의 이런 말처럼, GE는 품질관리 기법을 기업의 역사 속에서 확립해왔기에 패스트웍스 프로세스에도 정면으로 대응할 수 있다.
신생 기업의 기술을 30만 명의 대규모 조직에서 실천하다
패스트웍스 프로세스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는 이미 GE의 모든 사업 부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사례로는 주로 요양 시설에서 보행 재활 훈련을 하는 이용자와 물리치료사를 위해 일본에서 개발한 ‘아유미 아이(AYUMI EYE)’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센서를 이용해 걸음걸이의 균형 등을 데이터화하고 이런 데이터를 모바일 장치와 연동해 걸음걸이 상태를 시각화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실제로 이용하는 고객에게 프로그램 사양의 세부사항을 공개하고 그 피드백을 반영하여 수정·개량해서, 제품화 결정에서 제품 제공까지 보통 1년 이상 걸리는 과정을 3개월로 단축했다.
패스트웍스는 소형 제품뿐만 아니라 대형 발전용 가스 터빈 등에서도 계속해서 실적을 내고 있다. 고객이 기대하는 바에 초점을 두고 개발함으로써, 제품 개발의 사이클타임이나 개발 비용을 줄이고 연소 효율을 대폭 향상한 사례도 존재한다.
예전에는 프로젝트의 승인과 동시에 개발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이 할당되곤 했다. 그러나 패스트웍스는 각 과정을 달성할 때마다 다음 단계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벤처 캐피털 스타일로 구성되어 있다. 작게 시작하여, 빠르고 가장 적합한 크기에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패스트웍스 프로젝트 본연의 자세이다.
오오츠카는 이렇게 말한다. “’고객에게 더 높은 수준의 만족을 신속하게 제공한다’. 당연해 보이지만 선택된 기업이 되기 위한 조건입니다. 경쟁의 속도와 더불어 고객이 요구하는 속도도 어느 때보다 빨라졌습니다. 패스트웍스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고객에게 더 큰 만족을 제공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GE는 진지하게 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