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느새 네비게이션 장치는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몇 년 전만 해도 길을 잘 모르는 초보 운전자들이나 선택하던 네비게이션은 이제 절대적으로 많은 승용차 및 택시 같은 대중 교통수단에 당연하게 부착되어 있다. 운전할 때만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약속장소나 목적지를 찾아갈 때 주소를 입력한다.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스마트폰의 네비게이션 시스템을 이용해서 길을 찾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사실이 하나 있다. 네비게이션은 목적지에 이르는 길을 찾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그 길을 ‘가장 효율적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장치라는 점이다. 목적지에 이르는 최단 거리를 제시함으로써 시간과 노력을 아끼게 해주는 것이다.
이런 네비게이션은 당연히 항공 교통에도 적용되고 있다. 아니, 수많은 사람과 물류를 이동시키며, 운행 거리가 길고, 값비싼 연료를 이용하는 항공이야말로 어쩌면 네비게이션 시스템을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2004년 도입 이후 수많은 항공사에서 채택하여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GE항공의 RNP 항법 시스템은 항공을 위한 네비게이션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RNP에서 PBN으로
항공기를 이용해서 여행을 할 때 승객이나 물류 고객사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빨리 도착하는 것’이다. 이런 바람은 승객이나 화물 위탁 고객만 가지는 것이 아니다. 항공기가 제대로 도착하게 되면 항공사들은 시간적, 경제적으로 큰 이익을 얻는다.
과거의 항공기들은 지상에 설치된 항행 안전시설에서 발신하는 전파와 라디오 무선표지(radio beacon)에 의존해야 했다. 지상 설비에서 전파 신호를 발사하고, 항공기에 탑재된 무선 표지(전파의 방향을 측정하는 무선방위 측정기로 비행의 지표를 삼는 방식) 장치를 이용해 진행 방향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지상에 설치된 안전시절의 위치에 따라 항로가 지그재그 형태로 설정될 수 밖에 없어, 항로도 복잡했고 연료 소모도 많았다. 또한 전파 장애나 폭풍, 돌풍이나 난기류 등의 요소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단점도 있었다.
오늘날에는 항공기에 탑재된 운항 장비에 목적지와 경유지 등의 좌표만 입력하면 항공기 자체의 GPS를 이용해 항로와 위치를 계산할 수 있다. 인공위성의 전파를 수신하는 GPS는 과거의 방식보다 안정적이고, 직선 비행이 가능해서 연료도 아낄 수 있다. 이런 방식을 PBN(Performance-based Navigation: 성능기반항행)이라 부른다. GE항공은 이 PBN을 기반으로 차세대 기술인 RNP(Required Navigation Performance: 필수 항행 성능) 항법 시스템을 개발해 시행 중에 있다.
RNP 항법 시스템은 알래스카항공의 기장이자, 현재 GE항공의 기술자로 일하고 있는 스티브 풀턴(Steve Fulton)이 처음으로 제안했다. 험난한 주변 지형과 잦은 악천후로 인해 수시로 공항이 폐쇄되는 알래스카의 주도 주노(Juneau) 국제공항 때문에, 항공 교통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 밖에 없는 알래스카 주민들은 많은 불편을 겪고 있었다. 풀턴 기장은 기존 항공기의 자동 조종 시스템에 자세한 경유점들을 추가로 입력해 군더더기 없는 최단, 최적의 항로를 산출하는 초정밀 항법시스템 RNP 기술을 개발했다. 이제 항공기들은 지상 유도장치의 도움이 없어도 험준한 산이나 고층건물 같은 장애물들을 정확하게 피할 수 있게 되었고, 변덕스러운 날씨와 상관없이 안전하게 이착륙할 수 있다. RNP기술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한 GE항공의 PBN 서비스는 전세계 수백 곳의 공항과 관련된 주요 지형, 장애물, 공항의 세부 정보 등을 실제와 똑같이 시각화된 이미지로 제공한다.
GE항공이 바꾼 것들
GE는 FAA(미국 연방항공청)과 함께 미국 내 46개 지역의 공항에 GE항공 PBN 서비스 도입된 이후의 결과를 예측해서 연구 발표했다. <하늘의 고속도로(Highways in the Sky)>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한 해 동안 출발이나 도착 시간 지연 때문에 승객이 허비한 시간 비용은 160억 달러(약 16조 원) 이상에 이른다고 한다. 이에 따른 인건비, 연료비, 유지비용 등으로 항공사가 치른 손실 비용은 80억 달러에 이른다. 만약 항로 최적화로 항공 통행량과 공항 내부의 정체를 크게 완화시키는 PBM 서비스를 도입하면 연간 1,290만 갤론(약 4900만 리터)의 연료를 절약하고, 747일의 여행 시간을 단축하며 항공사 운영 경비를 6,560만 달러(약 6600억 원)나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GE항공 PBN 서비스를 46개 공항에 적용할 경우 연간 2억 7460만 파운드 (12만4556톤)나 되는 온실 가스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나무 130만 그루를 심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인 이런 효율성과 친환경성은, 청정 에너지와 기후 변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미 수많은 항공사에서 GE RNP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RNP 개념을 제안한 스티브 폴턴(Steve Fulton)의 알래스카항공에서는 2011년 기준으로 27개 공항에 RNP의 도움을 받아 접근 및 착륙했으며 이를통해 약 800톤의 연료와 200억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뉴질랜드의 퀸즈랜드공항의 항공교통량은 2011년부터 향후5년동안 40%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RNP 솔루션을 사용하여 공항반경의 접근절차 방식을 개선함으로써 연료 절감, 온실가스 배출 감소가 기대된다. 또한 효율적 접근방식은 더 많은 항공편 수용능력을 의미한다.
에티하드 항공의 허브인 아부다비 공항, 콴타스 항공이 이용하는 호주 전역 17개 공항도 RNP의 도움으로 보다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해졌다. 아부다비 공항에서는 에티하드 항공이 아닌 다른 항공사 소속 항공기들도 관계 당국의 적절한 운항 인증을 받으면 RNP 접근절차를 이용할 수 있어서 눈길을 끈다. 그 외 타이완의 에바 항공, 인도네시아의 가루다 항공, 이탈리아의 알 이탈리아 항공 등이 GE의 연료 관리 솔루션을 채택해서 비용을 크게 절감했다. 브라질 전역의 10개 공항에 제공되는 RNP서비스는 5년 동안 250억 원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이 서비스 덕분에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무사히 치러냈다는 호평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RNP서비스는 ‘지능형 운영(Intelligent Operation)’ 서비스로 발전할 전망이다. GE의 첨단기술인 산업인터넷과 결합된 항공 서비스 FES가 바로 그것인데, 항공기 부품과 시스템에 센서를 부착하고 이 센서들로부터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해, 정비 문제를 사전에 진단하고 예측하는 것이다. 이제 공항에서의 이착륙뿐 아니라, 기체 결함을 예방하고 정비나 운항 경로 계획 전반을 최적화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진정으로 스마트한 비행, 환경과 사람 그리고 기술 모두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비행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