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캄의 맞춤형 3D 프린터는 일반 3D 프린터에 사용되는 레이저보다 6~7배나 강력한 전자빔을 이용하여 티타늄 알루미나이드(TiAl) 분말을 녹인다.
이탈리아 북부의 포밸리(Po Valley) 지역 외곽에 위치한 카메리(Cameri) 마을은 그저 조용한 농촌 마을로 보인다. 하지만 주변의 숲 지대를 조금만 둘러보면 주변과는 다른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인구가 11,000명 정도 되는 카메리에는 록히드 마틴의 수직 이착륙 스텔스 제트기인 F-35B 합동공격 전투기(JSF)의 최종 조립 공장이 있는데, 미국을 제외하곤 키메라 공장이 유일하다. 공장의 활주로 바로 맞은 편에는 미래형 제조기업인 아비오 에어로(Avio Aero)의 3D 프린팅 공장이 위치하고 있는데, GE 항공이 차세대 보잉 777X 항공기를 위해 개발 중인 세계 최대 크기의 GE9X엔진에 장착될 매끈한 터빈 블레이드를 제작하고 있다. 이 터빈 블레이드는 제트엔진 내부에서 분당 2,500회 회전하며, 발생하는 열과 함께 어마어마한 힘을 받는다. 아비오 에어로의 조르지오 아브라테(Giorgio Abrate) 엔지니어링 총괄 매니저는 “블레이드 크기가 매우 크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동작시키기 위해 많은 실험을 거쳤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철강 및 유리로 제작된 청색과 회색의 아비오 에어로의 공장은 아르캄(Arcam)에서 생산한 옷장 크기의 검정색 3D 프린터를 20대 보유하고 있다. 컴퓨터에서 3D 프린터로 설계 파일을 입력하면, 3kW의 강력한 전자빔을 쏘아 40cm 길이의 터빈 블레이드 여섯 세트를 한 대의 프린터에서 동시에 출력할 수 있다. 전자빔은 티타늄 알루미나이드 분말을 얇게 한 층 한 층 적층하면서 블레이드를 ‘프린트’한다.
제트엔진 설계자들은 티타늄 알루미나이드 소재를 매우 좋아한다. 튼튼하고 열에 강함에도 불구하고 항공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금속 합금 무게의 절반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재는 충격 하중을 받을 때 파괴되는 취성(脆性, Brittleness)이 크다는 단점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3D 프린터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주조 기법으로만 블레이드를 제조할 수 있었다. 주조는 비싼 장비가 필요하고 제조 과정도 꽤 지저분한 편이었다. 데이비드 조이스(David Joyce) GE항공 CEO는 “아비오 에어로의 공장을 통해 적층제조 가능성의 미학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GE는 2013년에 아비오 에어로를 인수했다. 또 2016년 가을, 다시 한 번 큰 결정을 내렸는데 적층제조 분야 선도기업인 아르캄(Arcam)을 인수하고, 3D 프린팅과 같은 적층제조 기술에 포커스를 맞춘 GE애디티브(GE Additive) 사업부를 출범시켰다. 적층제조 산업은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성장성이 무척 크다. 현재 70억 달러 규모에서 10년 후면 8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산업이다.
아비오 에어로는 10여년 전부터 3D프린팅 기술을 연구했다. 당시 GE에서 보잉의 787 드림라이너에 장착될 GEnx 제트엔진에 세계 최초로 티타늄 알루미나이드(TiAl)를 사용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GE항공의 로버트 샤프릭(Robert Schafrik) 재료 및 공정 엔지니어링 총괄 매니저는 플라이트 글로벌 (FlightGlobal)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엔진 블레이드에 이 소재를 적용하는 것은 꽤 큰 도전이었습니다. 티타늄 알루미나이드의 무게가 니켈 합금 무게의 50% 정도만 된다면 무조건 티타늄 알루미나니드를 사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GE는 터빈 블레이드를 주조공장에서 제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 시장을 개척하고자 했던 아비오 에어로는 3D 프린팅에 과감히 도전했다. 아브라테 총괄 매니저는 이렇게 회상한다. “항공기 엔진용 터빈 블레이드를 3D 프린팅 기술로 생산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비오 에어로는 군용 기술 프로젝트를 통해 3D 프린팅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이미 확인한 경험이 있었죠.”
아비오 에어로는 록히드마틴의 합동공격전투기(JSF) 조립라인이 있는 카메리 지역에 적층제조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아브라테 총괄 매니저는 “위치 선정도 전략의 일부”였다고 말한다. “록히드마틴 공장 덕분에 항공업체들 사이에서 카메리 지역은 꽤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곳에서 잠재 고객에게 3D 프린팅을 알리고자 했고, 결국 그 잠재 고객들은 우리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이탈리아 카메리에 위치한 아비오 아베오 공장은 아르캄 프린터를 20대 보유하고 있다. (사진출처: Avio Aero의 Yari Bovalino)
하지만 아비오 에어로의 전략이 성공하려면 3D프린터가 필수였다. 그래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탈리아 3D 프린팅 분야의 선구업체, 프로토캐스트(ProtoCast)와 접촉했다. “정말 차고 같았습니다. 우리는 그곳을 ‘잠수함’이라고 불렀죠. 공방의 폭이 매우 좁아서 기계 앞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지나쳐 가는 것 조차 힘들었습니다.”라고 아브라테 총괄 매니저는 회상한다.
안타깝게도 프로토캐스트의 3D 프린터에서 레이저로 분말을 쏘았을 때 결과물의 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프린트된 제품을 플랫폼에서 떼어낼 때 균열이 발생하면서 깔끔히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곳에는 일반 3D 프린터의 레이저 강도의 6~7배 강력하게 티타늄 알루미나이드 분말을 전자빔으로 쏠 수 있는 아르캄의 프린트가 있었다. 아브라테 총괄 매니저는 프린터의 매개변수 값을 조정하면서 인쇄 분말층을 더 두껍게 하고 인쇄 속도도 올리는 등 몇 가지 조정을 위해 아르캄에 접촉했다. 수 차례의 실험을 거치면서 전자빔으로 분말을 녹지 않을 정도로만 예열을 해 두면, 프린트를 마친 뒤 부품의 잔류 응력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때 비로소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았습니다.”
아비오 에어로는 프로토캐스트를 인수했고, 아르캄과 독점 계약을 맺어 티타늄 알루미나이드 분말로 프린트할 수 있는 맞춤형 프린터를 공급받게 되었고, 아르캄으로부터 일정 수량의 프린터를 구매할 것을 약속했다.

컴퓨터에서 프린터로 설계 파일을 입력하면, 3kW의 강력한 전자빔을 쏘아 40cm 길이의 터빈 블레이드 여섯 세트를 1대의 3D프린터에서 동시에 출력할 수 있다. (사진출처: Avio Aero의 Yari Bovalino)
아비오 에어로가 금속 분말로 제조하는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준 뒤, GE는 이 기술의 가치를 재빨리 파악했다. GE항공은 3D 프린팅 기술을 본사 근처인 신시내티(Cincinnati)에서 개발하고 있는 중이었다. 당시 GE 항공은 모리스 테크놀로지(Morris Technologies)의 창업주이자 적층제조 부문을 선도하고 있는 그렉 모리스(Greg Morris)와 함께 LEAP 제트엔진에 부착할, 고효율 연료 노즐을 3D 프린터로 제작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아브라테 총괄 매니저는 “그들은 이미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GE가 아비오 에어로를 인수한 2013년 이후로 모든 작업이 가속화 되었죠. 정말 다행이었습니다”라고 회상한다.
카메리 지역에서 제작된 블레이드는 작년부터 테스트하기 시작한 첫 번째 GE9X 엔진 안에서 이미 검증되고 있다. 이 엔진에는 카메리에서 제작된 블레이드와 함께 신시내티에서 3D프린터로 제작된 연료 노즐이 사용된다. 이런 첨단 부품 덕분에 이전 모델인 GE90보다 연료 효율이 10%나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료비가 항공사 운영비의 약 19%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카메리의 아비오 에어로 공장에서는 8명의 전문가가 3D프린터에 분말을 채우고 프린팅된 부품을 정리하고 유지보수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9명의 제조 엔지니어가 있는데, 이들은 새로운 부품을 제작하기 위해 생산 전략을 세우고 생산 과정을 조정하고 있다. 그들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꽤나 바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엔지니어 중 한 명인 다리오 만테가차(Dario Mantegazza)씨는 말한다. “(3D프린팅의) 정교함엔 한계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