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금속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금과 은을 떠올린다. 하지만 가장 비싼 귀금속이라고 하면 역시 백금을 꼽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백금은 자연 상태에서 매우 희귀한 금속이다. 초신성(超新星, Supernova)은 폭발하면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분출해 대부분의 원소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원소의 용광로라 할 수 있는 초신성마저도 백금은 만들어내지 못한다. 최신 과학 이론에 의하면, 티스푼 하나 분량의 물질이 무려 1억 톤이나 되는 엄청난 밀도의 중성자 별 두 개가 충돌하면 백금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한다.

중성자 별의 한 종류인 마그네타의 상상도. (사진 저작권: ESO/L.Calçada)
은빛 원소 백금의 유용성은 엄청나다.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데에도 백금이 쓰이고, 연료 전지에서 전력을 생산해낼 때도, 심지어는 암과 싸우는 데에도 백금이 쓰인다. 따라서 과학자들이 단 1그램의 백금이라도 더 회수하려 애쓰는 건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GE글로벌리서치의 화학자 로렌스 쿨(Lawrence Kool)은 백금 회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낭비를 최소화하고 회수는 최대화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백금을 1그램이라도 더 회수하면, 그만큼 덜 구입해도 되니까요.”

2009년도에 제작한 100달러짜리 백금 동전. (사진 출처: 미국 조폐국)
백금의 주요 소비처 중 한 곳이며, 사용하는 백금의 회수율을 높이고자 노력하는 분야로 항공 산업을 빼놓을 수 없다. 항공기 제트엔진의 고압터빈(HPT) 블레이드에 열을 차단시켜주는 코팅제를 결합할 때 백금을 일종의 순간접착제로 사용한다. 이 코팅제는 터빈 내부의 고온과 부식으로부터 블레이드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블레이드는 엔진 속에 계속 장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정비사들은 정기적으로 블레이드를 꺼내 점검하고 수리하기도 한다. 문제는 백금이 떼어내기 무척이나 어렵다는 점이다. 로렌스 쿨은 “그리트-블래스팅(Grit-blasting) 공법을 이용하는 방식은 너무 어려워서, 회수 가능한 백금이 남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사용하고 난 그리트를 폐기물로 취급합니다. 시멘트에 들어가는 것 말고는 쓸 곳이 없기 때문이죠. 각각의 블레이드에는 약 1그램의 백금이 포함되어 있는데, 우리가 1년에 5만 개의 고압 터빈 블레이드를 취급하니, 그만큼의 비용을 더 지불하는 셈입니다.” (현재 화학적 회수 방법의 회수율은 68~91퍼센트 정도이다.)

GE의 제트엔진에 들어가는 고압 터빈 블레이드. 은색 표면이 열 차단 코팅제, 백금이 포함되는 부분이다.
코팅제는 얇은 플래티넘 알루미나이드를 통해 날개에 부착되어 있다.(사진 출처: GE항공)
GE항공은 매년 24톤에 달하는 고압터빈 블레이드를 폐기하곤 한다. GE는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백금을 버리는 대신, 로렌스 쿨에게 코팅제를 한 겹씩 벗겨낼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했다. 쿨은 코팅제를 용해시켜 백금 잔해를 날개에 남겨둘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러면 이 백금 잔여물은 물로 쉽게 씻겨 나가 백금 “스머트”라 불리는 질척질척한 물질로 바뀐다. 이 “스머트”는 순수한 백금을 49퍼센트나 함유하고 있으며, 쉽게 가공되고 정제될 수 있다. “덕분에 과학 공부 좀 열심히 했지요.”라고 쿨은 말한다.

회수된 백금 스머트에는 백금이 49퍼센트나 들어 있다. 마치 가공되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GE글로벌리서치)
쿨이 개발한 방식을 통해, 날개를 코팅할 때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백금 양의 최대 93퍼센트에 달하는 백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하이테크 재활용 기업인 ELG 메탈즈의 항공우주사업개발 매니저인 데니스 올리버(Denis Oliver)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 우리는 기존의 회수 방식을 사용하는 공급자와 거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방식으로는 GE 기술만큼 많은 양의 백금을 회수할 수 있거나, 레늄(Rhenium) 같은 희귀원소를 보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GE의 기술은 더 경제적입니다.”

GE의 CF6 제트엔진을 이루는 고압 터빈 부분.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을 포함한 많은 보잉747기가 이 엔진을 사용한다. (사진 출처: GE항공)
로렌스 쿨이 이 기술을 실험실 수준을 넘어 산업 환경에 맞추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렸다. “처음에는 초음파 세척기와 종이 필터만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원심분리기와 진동 배럴(Barrel)까지 필요하게 됐지요.” 쿨의 설명이다. 로렌스 쿨의 백금회수기술을 라이선스한 ELG메탈즈는 이제 이 기술의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GE에서 수거한 블레이드에서 코팅을 벗겨낸 후 ELG메탈즈는 스머트를 백금 정제소로 보낸다. 그 결과로 GE는 스머트가 함유한 백금을 받게 된다.

재활용된 제트엔진 날개. (사진 출처 ELG)
항공우주 산업 전반을 통틀어 한 해 약 백만 개 이상의 고압블레이드가 수거되어 폐기된다. ELG메탈즈는 GE의 기술을 이용하여 GE 뿐만 아니라 다른 제조사에서 만든 블레이드도 재활용한다. 데니스 올리버는 “우리 회사는 GE의 제품을 수년간 리사이클해왔고 이를 통해 GE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조만간 더 많은 블레이드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이전보다 더 많은 백금을 회수할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기술 이전을 주도한 GE벤쳐의 버나드 이브라힘(Bernard Ibrahim)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건 폐 루프(Closed-loop) 시스템입니다. 케이크을 가지고 있는 것과 먹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없다는 말이 있죠. 하지만 이 기술을 이용하면 케이크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먹을 수도 있는 셈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