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공예라고 하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의 놀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검색해보면, 의외로 세계 각국의 수많은 성인 남녀들이 종이로 여러 가지를 만드는 일에 진지하게 몰두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들이 만드는 종이 공예품들은 동서양의 성(城)부터 동식물, 추상적인 형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어지간한 종이 공예가들도 루카 야코니-스튜어트(Luca Iaconi-Stewart)의 작업 앞에서는 말을 잃는다. 스스로를 “항공을 사랑하는 미친 놈(crazy guy who loves aviation)”이라고 일컫는 그가 평범한 종이로 보잉 777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비행기의 겉모양을 만든 것이 아니다. 비행기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부품 하나하나, 조종실과 객실의 좌석을 비롯한 사소한 실내 부품을 다 만들고 그 위에 비행기의 외형을 입혔다. 말하자면 6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비행기 한 대를 완전히 혼자서 만들어낸 것이다.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야코니-스튜어트의 종이 비행기를 대하면 정확하고 정밀한 세부 묘사에서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항공기의 모양이 좋아요. 엔진을 사랑하죠!” 2008년부터 비행기에 매료된 22살 야코니 스튜어트는 이렇게 말했다. “디자인과 엔진을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그는 특히 엔진의 디자인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엔진 블레이드를 보면 아름답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죠.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전시된 GE90-115B 엔진 블레이드를 보면서 공부했어요.”

보잉 777에 장착된 GE의 엔진 GE90-115B는 지름이 3.4미터에 이른다. 왼쪽 사진에서 야코니-스튜어트는, 엔진 모형의 축소 비율에 맞춰 스스로의 모습을 만들어 엔진 앞에 놓았다. 오른쪽 사진은 실제 GE90엔진의 사진으로, 모형과 비교해볼 수 있다.
보잉 777항공기에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엔진인 GE90-115B가 2대 장착되어 있다. 세라믹복합소재로 만든 엔진의 팬 블레이드는 초당 수천 킬로그램의 공기를 엔진 속으로 빨아들인다. 야코니 스튜어트는 사진을 통해 비행기에 대한 지식을 쌓았고, 온라인으로 항공 정비도 공부했다. “제가 찾아볼 수 있는 기술 도면이 없었으니까요.”라고 그는 준비 과정을 설명한다.
야코니-스튜어트의 종이 비행기에는 이착륙 기어, 기내의 객실 등이 똑같이 재현되어 있는 것은 물론, 엔진 내부의 역추진 장치까지 실제와 똑같이 탈부착이 가능하다. “엔진 역추진 장치를 만드는 것은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그 부분이 작동하는 원리를 알 수 없었어요. 유투브 비디오와 엔진 뒤쪽을 찍은 사진을 보면서 연구해야 했어요. 그 디자인을 종이에 옮겨 놓으니 꽤 괜찮아 보였어요. 결과도 잘 나오기를 바랐죠.”
위 사진은 야코니-스튜어트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실제처럼 보이잖아요. 기내의 좌석 설치를 끝내기 전에 찍었어요. 덕분에 카메라를 기체 안에 넣어서 촬영할 수 있었지요.”
야코니-스튜어트는 항공기의 각 부분을 컴퓨터를 이용해 그린 후 종이 파일에 인쇄하였다. 그 다음엔 공작용 칼로 자른 부품을 족집게로 잡아 풀로 붙이는 식이었다. 말로는 아주 쉬워 보이지만, 엔진 하나를 디자인하는 데에만 한 달이 걸렸고, 그걸 다시 조립하는 데에 넉 달이 더 필요했다.
보잉 777 기종을 조종하는 파일럿 리처드 소우든(Richard Sowden)은 “GE90 엔진을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재현한 모형입니다. 종이만 가지고 엔진의 디테일을 이렇게 세밀하게 표현하다니, 과정을 보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라며 모형을 본 소감을 말했다.
야코니-스튜어트가 공학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작품이 더 놀랍게 느껴진다. 그는 2년 동안 대학에 다녔지만, “방향을 전환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학업을 중단했다. 현재는 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모형 비행기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저희 가족들은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해 줍니다. 전 운이 좋았죠.” 야코니 스튜어트의 이야기다.
그의 종이 비행기를 ‘마니아’ 청년의 괴상한 행동이 낳은 결과물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용적이지도 않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닌 일에 이 젊은이가 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야코니-스튜어트는 ‘비행기가 좋아서’ 종이 비행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애정과 노력이 어떤 이익으로 돌아올 것인지를 계산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상을 있게 한 수많은 발명과 발견들이 이런 무조건적인 애정과 노력에서 시작되었음을 떠올려보자. 오래 전에, 새처럼 하늘을 날고자 꿈꾸던 사람들이 있었다. 당대의 사람들은 그들의 허황한 노력을 비웃었지만, 그 황당한 꿈과 노력이 있어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야코니-스튜어트의 이런 열정이 미래에 어떤 가능성으로 펼쳐질지 우리는 아직 알 수 없다. 야코니-스튜어트의 작업에 GE가 응원과 관심을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야코니-스튜어트의 보잉777 모형 사진들. 그의 플리커에서 더 많은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사진의 저작권은 모두 루카 야니-스튜어트에게 있음)
항공기 좌석 설치 과정을 담은 짧은 영상.

앞쪽 이착륙 기어, 야코니-스튜어트는 이 기어가 어떻게 기능하고 동체 안으로 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짧은 동영상도 함께 올렸다.

항공기 화물칸의 문은 경첩으로 본체와 연결되어 있다.

GE90 제트 엔진의 팬 블레이드와 컴프레셔 블레이드. 옆의 사진을 통해 실제 엔진과 비교할 수 있다.

가운데 부분의 망을 통해 엔진의 역추진 장치가 보인다.

이 사진은 꼬리 날개의 내부 구조와 거기에 연결된 방향타를 보여준다. 꼬리 날개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야코니-스튜어트는 여러 번의 실패를 겪었다.

일반 승객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승무원 휴식 공간의 모형. 실제 비행기 내부 공간과 비교해보면 모형의 정밀함을 확인할 수 있다.

장거리 비행의 경우 승무원들은 좌석 두 개와 침대 두 개가 있는 휴식 공간에서 쉰다. 오른편 사진은실제 비행기 내부 공간이다.

객실로 들어가는 입구. 열린 문 왼쪽으로 일등석 객실이 보인다. 승무원 좌석 3개가 벽에 붙어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전체 342석의 좌석 설치가 완전히 끝난 보잉 777기의 실내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