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3D프린팅 기술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앞으로 적층 제조공정이 우리 일상생활을 바꿀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이런 질문을 한 번 던져본다. 첨단산업부터 우리 삶에 즐거움을 던져주는 아이디어 상품까지, 3D 프린팅을 적용한 수많은 사례가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예가 바로 장애인과 3D프린팅 기술의 관계다.
3D 프린팅을 이용하면 장애를 겪는 사람의 특성과 상황에 맞는 보조 기구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최근 세계 여러 곳에서 개발 사례가 등장하고 있는 외골격 보조장치, 즉 몸에 입듯 착용하는 보조기구들이 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흔히 ‘장애’나 ‘장애인’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지만, 사실 장애는 경험하는 사람마다 개별적인 상황이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다. 장애의 원인과 사례, 불편을 겪는 부분과 내용 등이 그야말로 각양각색으로 다르다. 그에 비해 장애인들의 생활을 도와주는 보조도구는 양산된 것이었다. 휠체어나 워커 같은 보조기구들은 개인의 장애나 체형에 맞게 조절할 수 있으나 그 조절 폭이 크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기구에 몸을 적응시켜야 하는 불편을 경험했다.
더 자유롭게, 내 몸에 맞춘 이동이 가능해진다
브릿징 바이오닉스 재단(Bridging Bionics Foundation)의 이사장 아만다 복스텔(Amanda Boxtel)은 22년 전 스키를 타다 당한 사고로 척추가 골절되어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남은 인생을 휠체어에서 보내야 했다. 미국에만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600만 명이 넘는데, 그 동안 이들이 이동하기 위해서는 전동 이동장치나 전동 휠체어가 이용되었다. 전동 장치 덕분에 그 이전에 비해 장애인들의 이동성이 한결 높아지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휠체어의 형태나 크기 때문에 장애인들의 활동이 여러 모로 제한되는 영역이 많았다.
지난 달 열린 아스펜 아이디어 페스티벌(Aspen Ideas Festival)에서 아만다 복스텔이 발표자로 나섰다. 그녀는 3D 시스템 코퍼레이션(3D Systems Corporation)사에서 받은 전화가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첨단 3D 프린팅 기술로 만든 외골격 보조장치를 이용해, 장애를 갖기 전처럼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몸에 입는 수트처럼 생긴 새로운 외골격 보조장치를 쓰면, 장애인들은 휠체어를 이용할 때처럼 계속 앉아 있지 않아도 된다. 복스텔은 이 장치를 이용해 20년만에 스스로의 두 다리로 일어서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발표에서 그녀는 외골격 보조장치에 대한 사용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결국엔 매일 착용하게 되었어요. 제 몸에 맞춘 것이기 때문에 정말 잘 맞죠.”
콜로라도 대학교의 생명공학자 로빈 샌다스(Robin Shandas)는 복스텔의 발표를 주선한 인물이다. 그는 우리가 ‘3D 프린팅이 누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질문하는 것’을 잊었다고 지적한다. 즉 “휴머니티를 우리의 디자인에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첨단 3D 프린팅 기술로 만든 외골격 보조장치 © 3D Systems
디자인의 휴머니티
3D 프린팅과 적층 가공 방식은 생산과정 변화와 효율성 향상을 중심에 두고 있다. 복스텔 이사장을 도운 3D 시스템 코퍼레이션의 부회장 스콧 서밋(Scott Summit)은 자신들의 목표가 “거추장스러운 의료 장비를 치워버리는 것, 모든 것이 융합된 디자인 제품으로 거듭나는 것”에 있다고 밝혔다. 장애인들이 하루 종일 착용해야 하는 보조 장치는 기능뿐 아니라 착용감이나 디자인적 요소 또한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한 이야기다.
서밋은 아스펜에서 자사의 외골격 보조장치를 공개했다. 마치 아이언맨의 수트처럼 생긴 이 장치는 사용자가 팔다리의 외골격에 장착하여, 즉 몸에 겉옷을 걸치듯 입은 형태이다. 로봇 기술이 이 외골격을 움직여주는 덕분에 장치를 착용한 사용자는 일어서거나 마비된 사지를 조금씩 움직이는 일이 가능해진다.
아스펜 페스티벌에서 공개된 맞춤형 외골격 보조장치는 사실 3D 프린팅 기술로 장애를 극복하고자 한 최초의 시도는 아니다. 3D 프린터 제작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싱기버스(Thingiverse) 회원들과 장애인 운동가들은 이동에 제한이 있는 사용자들의 삶을 좀 더 편리하게 해줄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가볍고 튼튼한 지팡이, 휠체어를 위한 개인 맞춤형 경사로, 장애인용 포크와 나이프 등이 그 예다.

3D 프린팅 기술로 시각장애인용 지팡이와 휠체어를 위한 개인 맞춤형 경사로
영국의 대학생인 올리버 바스카란(Oliver Baskaran)도 이런 온라인 커뮤니티의 제작자로서, 본인 역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다. 그는 바에서 음료를 주문하면서 불편함을 경험한 후, 본인을 위해 유연하게 구부러지는 빨대가 달린 특수 컵을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스트레스 없이 친구들과 바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 그에게는 무척 중요한 일이다.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스스로 디자인하고 자신이 소유한 3D 프린터를 이용해 결과물을 디자인하는 그의 문제 해결 방식은, 예전의 장애인들이라면 생각할 수 없던 일이다.

영국의 장애인 대학생인 올리버 바스카란이 자신의 불편함을 해소하기위해 직접 고안한 특수 컵과 빨대
나만을 위한 맞춤형 제품으로 일상을 되찾다
3D 프린팅 기술이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다른 사례들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해 가을, ‘아이디어 랩’에서는 발에 문제가 있어 보조장치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3D 프린터로 깔창을 제작한 케이건 슈웬버그(Kegan Schouwenburg)의 경우를 다룬 적이 있다. 기존의 깔창은 투박한 디자인이었고, 발에 잘 맞지 않아서 사용하다 보면 통증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3D 프린터로 개인별 맞춤 생산한 제품은 그와는 전혀 다르다. “땀이 차고 투박한 깔창이 아니라,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볍고 얇고 튼튼한 제품을 만들어냈어요.” 슈웬버그의 이야기다.
장애인을 위한 3D 프린팅 기술의 미래는 밝다. 장애인 운동가인 라울 크라우타우센(Raul Krauthausen)은 본인의 3D 프린터를 이용해 맞춤형 경사로를 만들어왔고, 베를린에서 장애인이 접근하기 쉬운 곳을 알려주는 지도를 공동 작업으로 만들고 있다. 그의 프로젝트는 적층 가공기술과 크라우드 소싱 디지털 기술, 전통적 가치의 융합과 통섭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만화와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따지고 보면 남보다 불리한 조건에 처한 인물이다. 그는 심장 동력 보조장치의 도움 없이는 활동은 물론 생존조차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보조장치의 기능을 극대화하고 파워수트까지 개발하면서 토니 스타크는 슈퍼히어로로 활약하게 된다.
3D 프린팅으로 맞춤 제작하는 보조장치의 발상은 어떤 면에서는 <아이언맨>의 아이디어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개별의 장애에 알맞은 해결책을 발견하고, 그 사람이 원하는 삶을 살도록 돕는 데에 기술의 취지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생각하는 기술, 휴머니티가 있는 기술이란 이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들이 평범한 일상을 누리도록 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